불과 한 달 전까지 필자는 미국 뉴욕에 있었다. 코로나19가 창궐하는 현장에서 귀국해 자가격리를 하면서 한·미 감염병 대응 과정을 직접 체험했다. 잘 알려진 대로 두 나라의 초기 방역정책은 확진자·사망자는 물론 경제에 미치는 영향까지 엄청난 차이를 낳았다. 우리나라는 코로나19 확산 초기부터 효과적으로 대응해 WHO(세계보건기구)와 미국·유럽으로부터 최고의 방역국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뉴욕타임즈를 포함한 주요 해외 언론은 대한민국이 우수한 IT기술을 바탕으로 확진자 동선을 추적해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시스템에 주목하기도 했다.
코로나19는 과학 기술의 아이러니도 드러냈다. 우리나라 보건당국은 Test(검사·확진) Trace(역학·추적) Treatment(격리·치료)를 의미하는 3T 전략을 구사했다. 특히 확진자 추적·관리에 스마트폰 앱 기술을 적용해 큰 효과를 봤다. 과학기술 종사자인 필자는 첨단기술 활용 못지 않게 아날로그적 방역정책이 성과를 냈다고 생각한다. 개개인의 마스크 착용과 위생관리에 물리적 거리두기가 바로 그것이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사람과 사람의 접촉에 의해 확산되는 질병은 감염을 직접 차단할 수 있는 아날로그 방식의 대응이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아시아와 달리 유럽이나 미국인은 일상생활에서 마스크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마스크를 쓰면 상당히 심각한 환자로 취급 받는다. 29일 여론조사기관 유고브에 따르면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착용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영국은 31%로 90%대인 아시아국가보다 훨씬 낮았다. 미국과 독일은 각각 71%와 64%대였다.
서양과 달리 우리나라는 중국발 황사와 미세먼지의 영향 때문에 마스크 착용이 점차 일상화되는 추세였다. 바로 이것이 효과적으로 코로나19 확산을 저지한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기 전까지는 어떤 첨단기술보다 아날로그 방식이 우선되어야 하는 이유다.
앞서 미국질병관리국(CDC)이나 WHO는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마스크 사용이 큰 효과가 없다”며 잘못된 처방을 내리는 우를 범했다. 문제는 마스크 착용 효과에 대한 과학적 데이터가 발표되고 있음에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무슨 이유인지 아직도 마스크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사망자가 12만 명을 넘어선 것은 이런 현상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세계 최대 마스크 제조사가 바로 미국 기업인 3M과 허니웰 임에도 미국인은 여전히 마스크 부족 사태에 시달리고 있다.
또 하나의 아이러니는 스마트폰 앱기술과 확진자 동선 추적 기술이 모두 미국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앱 기술은 미국 애플사가 처음 개발해 상용화했다. 우리나라 기업은 많은 기술료를 주고 기술을 수입했다. 확진자 추적에 사용되는 GPS(Global Positioning System) 기술도 1970년대 미국 국방성에서 개발했다. 지금도 미국 인공위성의 도움 없이는 GPS 기술을 사용할 수 없다. 미국은 이러한 원천기술을 코로나19 초기에 적용하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수입한 기술을 적재적소에 적절한 시간에 사용했다. 아무리 우수한 원천기술을 보유했다고 해도 그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현격하게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 극명한 사례인 셈이다.
사실 많은 과학기술이 이런 아이러니를 갖고 있다. 우주 로켓기술과 레이더 등 많은 현대 과학기술은 2차 세계대전의 참화 속에서 대부분 독일 나치에 의해 개발되었다. 2차 대전을 끝낸 원자폭탄은 물질의 탄생을 밝히고자 했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E=MC2)이 기초가 되었다. 원자력 기술은 인간에게 거의 무한대의 에너지를 제공하고 있지만 방사능 사고와 같은 치명적 환경오염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인류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언택트’라 불리는 새로운 삶의 양식에 적응해야 한다. 앞으로 무궁무진한 언택트 과학기술이 출현할 것이다. 이러한 기술이 먼 훗날 어떤 아이러니를 낳을 지 사뭇 궁금하다.
울산대 첨단소재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