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아침숲길] 7월의 아침 편지를 보내며 /정일근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7-02 19:26:34
  •  |  본지 17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푸른 바다로 가는 길이 그리운 7월입니다. 그 첫날, 그대에게 여름편지를 쓰며 첫 문장을 적고나니 가슴이 먼저 먹먹해집니다. 요즘 우리 세대인 베이비부머가 살면서 가장 가혹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습니다. IMF 시기에도 저버리지 않은, 모든 희망이 사라진 불사막을 맨발로 혼자서 걸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미 베이비부머의 20%가 은퇴자가 되었고 31%가 사회 빈곤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IMF 그땐 그래도 희망은 사라지지 않고 주머니 속에 남은 게 있어 용기를 가지고 재도전을 했지만, 아직 진행 중인 끝을 알 수 없는 오늘은 무엇이며 내일은 또 무엇이라 이름 해야 합니까. 전염병 치료를 위한 백신도 없고, 무엇보다 일상을 박탈당한 하루하루가 견디기 힘듭니다. 자유보다 사람이 둥글게 살아가는 일상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저는 새삼 느낍니다. 전 세계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진 자가 2천만 명이 넘어간 세기에 말입니다.

만원 시내버스를 타는 일, 신호등에 서있다 푸른 신호에 양쪽에서 파도처럼 쏟아지는 사람들과 함께 섞이며 지나가는 일, 우정 깊은 친구들끼리 모여 술잔을 돌리며 격의 없이 취하는 일…. 그런 대수롭지 않은 일상을 박탈당한 것이 저를 우울하게 합니다.

그리스 시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고 정의한 말을 이해하고 살아온 인류가, 이제는 인간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동물’이 되었습니다.

저도 종일본가(終日本家)하는 날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야기 상대가 AI 스피커로 바뀌었습니다. 정현종 시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고 했습니다만, 이젠 그것도 틀린 은유가 되었습니다. 이젠 사람이 섬입니다. 망망대해에 혼자 떠 있는, 혼자 말하는 섬입니다. 마스크를 쓰고 손을 씻는 섬입니다. 저는 자가 격리가 두려운 섬이어서 더욱 움츠려 드는 섬입니다.

이 병란(病亂)에 사람이 숙주며, 사람이 전염체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두렵고 무서운 존재입니다. 남이 나에게 그렇듯, 나 역시 남에게 그런 존재입니다. 익명이 편안한 존재가 아니라 가장 무서운 경계인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사람만이 희망인 세상은 언제 회복되는 것입니까. 우주로 가고, 슈퍼컴퓨터를 가진 21세기가 아직 답을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대에게 묻습니다. 우리가 문명시대에 살고 있었습니까?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우다’는 책이 있었습니다. 1992년에 출판돼 세계적으로 많은 독자를 가진 책입니다. 저자는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입니다. 라다크는 ‘작은 티베트’라 불리는 인도의 서부 히말라야 고원의 작은 땅입니다. 이 지역은 빈약한 자원과 연평균강우량이 84㎜밖에 되지 않는 건조한 땅에서 ‘생태적 지혜’를 통해 천년이 넘도록 평화롭고 건강한 공동체를 유지해왔습니다.

하지만 라다크까지 현대문명이 들어가면서 마구잡이식 개발로 환경이 파괴되고 사회적으로 분열되었습니다. 저자는 현장에서 그 과정을 지켜보며, 사회적, 생태적 재앙에 직면한 우리의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희망을 ‘개발 이전의 라다크적인 삶의 방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래된 미래’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먼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연어처럼 시간을 거슬러가는 과거에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알고 보면 우리의 21세기는 옛 라다크보다 현실적으로 불안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순식간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불안한 미래’에 닿고 보니 더욱 그러합니다. 이 미래는 마스크가 부적이며, 통행증입니다. 해방 이후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사회적인 구호는 ‘뭉치면 죽는다’는 무서운 경고로 바뀌었습니다.

대학에서 시 창작을 가르치는 저는 강의실에 모인 학생들과 이른바 대면강의로 시를 완성시켜 나갔습니다. 인터넷 강의를 마친 지금, 얼굴을 보지 못한 학생들에게 많이 미안합니다. 어디서 만나도 우리는 마스크를 쓴 채 경계의 눈초리로 모르는 사람으로 스쳐 지나갈 것입니다.

인문학의 꽃인 시를 가르치면서 저는 시가 ‘악의 꽃’으로 시들지 모르겠다는 불안을 느낍니다. 200%를 가르쳐도 부족한데 50%도 채 전달되지 않는 제 강의에 벌써 무기력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대. 우리가 맞이한 이 미래는 유통기한이 언제까지인지 모릅니다. 최소한 내년까지도 일상을 포기한 불편한 미래에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이런 미래가 사는 동안 더 독해진 바이러스로 불쑥 불쑥 게릴라처럼 찾아올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올해 입학한 신입생들은 벚꽃이 피는 캠퍼스의 낭만도 모른 채, 교수와 생맥주 잔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종강의 자리도 가지지 못한 채 자기의 섬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모이는 일보다 흩어지는 일에 익숙해야 합니다. 그렇게 모든 질서가 재편되는 미래인 칠월입니다.

시인·경남대 석좌교수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많이 본 뉴스RSS

  1. 1통합당 부산시장 보선 여론조사설…후보군 진위에 촉각
  2. 2물에 잠긴 화개장터…낙동강 둑 터진 창녕
  3. 3신라젠 상장폐지 결론 못내…17만 소액주주 분통
  4. 4오늘의 날씨- 2020년 8월 10일
  5. 5야당 불 붙은 시장 경선 준비…포럼 잇단 발족
  6. 6 피서지 대목도 쓸어간 폭우…상인들 “올해 장사 물건너 갔다”
  7. 7 거제 복항마을
  8. 8BTS 소속사 빅히트, 코스피 상장예심 통과
  9. 9집 무너지고 도로 끊기고…거창 80대 토사 매몰돼 숨져
  10. 10오늘의 운세- 2020년 8월 10일(음력 6월 21일)
  1. 1통합당 부산시장 보선 여론조사설…후보군 진위에 촉각
  2. 2야당 불 붙은 시장 경선 준비…포럼 잇단 발족
  3. 3박재호·하태경 “동남권 관문공항 초당적 협력”
  4. 4특별재난지역 선정 부산 소외…지역 정치권 제도 개선 나섰다
  5. 5정진석 “문 대통령 퇴임 이후 생각하셔야”…여권 의원들 “협박하는 건가” 맹공
  6. 6청와대 민심 수습용 집단 사표…야당 “부동산 못 버리니 직 내놨나”
  7. 7여당 새 지도부 당 주도권 강화할까…당청관계 변화 주목
  8. 8박수영 “지자체장 보선 연 2회로 늘리자”
  9. 9노영민 비서실장·청와대 수석 5명 사의표명
  10. 10문대통령, 특별재난지역 선포…경기·충청·강원 등 7곳
  1. 1어묵의 역사 한 눈에…삼진어묵 영도본점 새단장
  2. 2분양에서 전자계약까지 한 곳서…‘부동산계 카톡’이 왔다
  3. 3내년 550조 ‘초슈퍼 예산’ 예고
  4. 4"부산 재난지원금 경제효과, 지역 내 발생 비중 38% 불과"
  5. 5울산 경북 해역에도 해파리 주의 특보 발령
  6. 6화물운송업 지입제도 불합리한 관행 개선
  7. 7미중 갈등·고용 지표 양호에 혼조세…다우 지수 +0.17%
  8. 8울산 경북 해역에도 해파리 주의 특보 발령
  9. 96월 수출실적 개선…경상수지 8개월 만에 최대 흑자
  10. 10중국발 저염분수 첫 확인…제주 어업 영향 촉각
  1. 1광주 사설 납골당 침수에 민원 폭주
  2. 2물빠진 화개장터… 흙탕물 범벅
  3. 3구포대교 홍수주의보…낙동강 생태공원 모두 침수
  4. 4제5호 태풍 ‘장미’ 발생 제주-경남 방향으로 북상중
  5. 5광주공항 9일 오전부터 운항 재개
  6. 6동부산대 이달 폐쇄 명령 교육부 “재학생 특별편입학 추진”
  7. 7경남 합천 침수 마을서 소 110마리 구조작전
  8. 8창녕 이방면 2개 마을 침수…마을 주민 대피
  9. 9비 잠시 주춤한 부산 운동장 붕괴·침수 피해 등
  10. 10부산 코로나19 확진자 ‘0’ 누적 173명 유지
  1. 1‘메시 원더골’ 바르샤, 나폴리 꺾고 챔스 8강
  2. 2월요예선 거친 2부 투어 김성현, KPGA선수권 제패
  3. 3국내파 동생들, 해외파(LPGA·JLPGA 선수) 언니들에 2년 연속 ‘매운맛’
  4. 4사직 관중 5694명까지↑…10일 홈 8연전 예매 시작
  5. 5롯데 ‘8월 무패 행진’…허문회 ‘8치올’ 예언 현실로
  6. 6KBO 올스타전 취소에도 올스타 '베스트12'는 뽑는다
  7. 7바르셀로나, 뮌헨 UCL 8강 진출
  8. 8스트레일리 마차도 맹활약... 롯데, SK 8-2로 잡고 4연승
  9. 9US오픈테니스, 상금 35억
  10. 10올해 가장 ‘치명적’ 공격수는 호날두 아닌 무리엘
우리은행
21대 국회 대해부
PK 당선인의 ‘인생 입법’- 김두관·서병수 진심 인터뷰
21대 국회 대해부
PK 당선인의 ‘인생 입법’- 울산 경남 당선인 역점 법안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세계유산은 희생 없이 절대 가질 수 없다
포구예찬
기고 [전체보기]
청바지에 관한 단상 /천윤욱
지나친 어업 규제 조치가 두렵다 /정성문
기자수첩 [전체보기]
가덕신공항, 대통령이 결단할 때 /김해정
노무현이 말한 북항 재개발 /김미희
김용석 칼럼 [전체보기]
삼각 교수대와 황금 요강
누가 바람과 함께 사라질까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온고지신과 뉴트로
불교의식 음악과 춤 단상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부산형 뉴딜의 성공 조건 /이석주
담대한 도전 /정옥재
도청도설 [전체보기]
긴 장마와 태풍
류호정 원피스
문태준 칼럼 [전체보기]
이주의 시대와 문학
손편지의 위로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음식 관광 상품의 쓸모
기내식과 고추장
사설 [전체보기]
남부도 폭우 쑥대밭…재난 대비 기반시설 강화해야
동부산대 폐교…지방대 구조조정 후속 대책 만전을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청년 기본소득이 ‘가짜 기본소득’인 이유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이유
이수훈 칼럼 [전체보기]
기후위기 그리고 그린 뉴딜
6·25전쟁, 끝내야 한다
이은화의 미술여행 [전체보기]
명작이 된 습작
세계 최초의 추상화가
이홍 칼럼 [전체보기]
외국인 근로자 문제, 어떻게 해야 하나
경제 후폭풍이 몰려오고 있다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불신의 벽 넘어야 할 행정수도 이전
청주와 반포 사이
조영석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베토벤 ‘월광소나타’
6월의 뱃노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과 여행
비처럼 와인처럼
특별기고 [전체보기]
‘도시국가’시대 市長의 역할 /정해문
‘코로나 19’ 반드시 이겨낼 것이다 /곽붕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신윤복의 ‘저잣길’
겸재의 신비한 그림 ‘사직송’
  • 2020국제환경에너지산업전
  • 행복한 가족그림 공모전
  • 국제 어린이 경제 아카데미
  • 유콘서트
  • 2020 어린이 극지해양 아카데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