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다로 가는 길이 그리운 7월입니다. 그 첫날, 그대에게 여름편지를 쓰며 첫 문장을 적고나니 가슴이 먼저 먹먹해집니다. 요즘 우리 세대인 베이비부머가 살면서 가장 가혹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습니다. IMF 시기에도 저버리지 않은, 모든 희망이 사라진 불사막을 맨발로 혼자서 걸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미 베이비부머의 20%가 은퇴자가 되었고 31%가 사회 빈곤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IMF 그땐 그래도 희망은 사라지지 않고 주머니 속에 남은 게 있어 용기를 가지고 재도전을 했지만, 아직 진행 중인 끝을 알 수 없는 오늘은 무엇이며 내일은 또 무엇이라 이름 해야 합니까. 전염병 치료를 위한 백신도 없고, 무엇보다 일상을 박탈당한 하루하루가 견디기 힘듭니다. 자유보다 사람이 둥글게 살아가는 일상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저는 새삼 느낍니다. 전 세계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진 자가 2천만 명이 넘어간 세기에 말입니다.
만원 시내버스를 타는 일, 신호등에 서있다 푸른 신호에 양쪽에서 파도처럼 쏟아지는 사람들과 함께 섞이며 지나가는 일, 우정 깊은 친구들끼리 모여 술잔을 돌리며 격의 없이 취하는 일…. 그런 대수롭지 않은 일상을 박탈당한 것이 저를 우울하게 합니다.
그리스 시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고 정의한 말을 이해하고 살아온 인류가, 이제는 인간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동물’이 되었습니다.
저도 종일본가(終日本家)하는 날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야기 상대가 AI 스피커로 바뀌었습니다. 정현종 시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고 했습니다만, 이젠 그것도 틀린 은유가 되었습니다. 이젠 사람이 섬입니다. 망망대해에 혼자 떠 있는, 혼자 말하는 섬입니다. 마스크를 쓰고 손을 씻는 섬입니다. 저는 자가 격리가 두려운 섬이어서 더욱 움츠려 드는 섬입니다.
이 병란(病亂)에 사람이 숙주며, 사람이 전염체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두렵고 무서운 존재입니다. 남이 나에게 그렇듯, 나 역시 남에게 그런 존재입니다. 익명이 편안한 존재가 아니라 가장 무서운 경계인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사람만이 희망인 세상은 언제 회복되는 것입니까. 우주로 가고, 슈퍼컴퓨터를 가진 21세기가 아직 답을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대에게 묻습니다. 우리가 문명시대에 살고 있었습니까?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우다’는 책이 있었습니다. 1992년에 출판돼 세계적으로 많은 독자를 가진 책입니다. 저자는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입니다. 라다크는 ‘작은 티베트’라 불리는 인도의 서부 히말라야 고원의 작은 땅입니다. 이 지역은 빈약한 자원과 연평균강우량이 84㎜밖에 되지 않는 건조한 땅에서 ‘생태적 지혜’를 통해 천년이 넘도록 평화롭고 건강한 공동체를 유지해왔습니다.
하지만 라다크까지 현대문명이 들어가면서 마구잡이식 개발로 환경이 파괴되고 사회적으로 분열되었습니다. 저자는 현장에서 그 과정을 지켜보며, 사회적, 생태적 재앙에 직면한 우리의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희망을 ‘개발 이전의 라다크적인 삶의 방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래된 미래’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먼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연어처럼 시간을 거슬러가는 과거에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알고 보면 우리의 21세기는 옛 라다크보다 현실적으로 불안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순식간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불안한 미래’에 닿고 보니 더욱 그러합니다. 이 미래는 마스크가 부적이며, 통행증입니다. 해방 이후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사회적인 구호는 ‘뭉치면 죽는다’는 무서운 경고로 바뀌었습니다.
대학에서 시 창작을 가르치는 저는 강의실에 모인 학생들과 이른바 대면강의로 시를 완성시켜 나갔습니다. 인터넷 강의를 마친 지금, 얼굴을 보지 못한 학생들에게 많이 미안합니다. 어디서 만나도 우리는 마스크를 쓴 채 경계의 눈초리로 모르는 사람으로 스쳐 지나갈 것입니다.
인문학의 꽃인 시를 가르치면서 저는 시가 ‘악의 꽃’으로 시들지 모르겠다는 불안을 느낍니다. 200%를 가르쳐도 부족한데 50%도 채 전달되지 않는 제 강의에 벌써 무기력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대. 우리가 맞이한 이 미래는 유통기한이 언제까지인지 모릅니다. 최소한 내년까지도 일상을 포기한 불편한 미래에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이런 미래가 사는 동안 더 독해진 바이러스로 불쑥 불쑥 게릴라처럼 찾아올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올해 입학한 신입생들은 벚꽃이 피는 캠퍼스의 낭만도 모른 채, 교수와 생맥주 잔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종강의 자리도 가지지 못한 채 자기의 섬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모이는 일보다 흩어지는 일에 익숙해야 합니다. 그렇게 모든 질서가 재편되는 미래인 칠월입니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