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함께 먹을 식당이나 회식 장소를 정해야 하는데 상사가 이렇게 말한다고 생각해 보자. “냉면으로 하든지.”
문법 항목 ‘-든지’는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아직 종결어미로 등재되지 않은 ‘연결어미’지만, 실제 대화상에서는 문장의 종결부에서 종결어미처럼 사용되어 명령의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렇게 대화에서 언어가 실제로 수행하는 바를 언어 행위, 즉 화행(話行, speech act)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화행은 언어 형식이 지니는 기본 의미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가령, ‘냉면으로 하면 어때요?’라는 말은 문장 유형으로는 의문문에 해당하지만,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점심 예약을 하도록 요청하는 상황에서의 발화라면 명령의 뜻, 즉 지시화행(指示話行, directive speech act)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어떠한 화행을 나타내기 위해 다양한 언어 형식이 쓰일 수 있는 것이라면, 말하는 사람은 ‘왜’, ‘어떠한 의도로’, 하필 그 문법 항목을 선택한 것일까? 왜 부장님은 “냉면으로 해” 혹은 “냉면을 먹읍시다”라고 하지 않고 ‘냉면으로 하든지’라고 말씀하신 것일까? ‘-든지’에 관한 연구들은 이 문법 항목이 지시화행으로 사용될 경우 선택권을 청자에게 넘기듯 표현하여, 명령의 뜻을 완화하고 결과에 대한 화자의 책임을 줄일 수 있다고 기술한다.
관계를 중시하고, 듣는 사람의 체면 및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 사람들은 직설적인 명령 화법보다는 완곡하고 은근한 방식으로 명령의 뜻을 전달하기를 선호하는 경향성이 있다. ‘냉면으로 하든지’라는 상사의 말에 ‘그럼 그냥 된장찌개로 할게요’라든지, ‘음, 비빔밥집으로 예약해 두겠습니다’라고 답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듣는 사람에게 선택권을 주는 문법 ‘-든지’가 쓰였지만, 이미 선택권이 상사에게 있다는 의사소통에 대한 맥락(context)을 대화 참여자들이 서로 공유하기 때문이다.
국어학을 연구한다는 것은 단순히 맞춤법을 외우고, 틀린 어법을 고치는 일이 아니다. 국어 문법을 연구한다는 것은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사용하는 무수한 문법 형태를 책상 앞으로 소환하여, 그 안에 담긴 사람의 의도와 뜻을 분석하는 일이기도 하다. 지극히 사소해 보이는 문법 항목 ‘-든지’ 안에 담긴 다양한 맥락과 문화적 요인을 샅샅이 살펴 나가는 일, 그 문법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의도와 문화, 사상을 밝혀 가는 일, 그것이야말로 국어학 연구가 이 사회 안에서 궁극적으로 환기하고자 하는 인문학적 상상력인지도 모른다.
점점 더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는 소통의 관계망 속에서 역설적으로 더 많은 불통의 씨앗을 품고 사는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어쩌면 아주 단순한, ‘-든지’ 안에 담긴 뜻을 해석할 수 있는 언어적 상상력과 직관력은 아닐지. 사람의 말을 통해 타자를 발견하고, 그 타자가 선택해 쓰는 문법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 관심으로 말미암아 추상적이기만 했던 ‘소통’을 눈앞에서 구체화해나가는 일. 나는 그것이 바로 국어 문법 연구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문법 교육이 필요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문법은 고리타분하고 거추장스러운 겉옷에 불과하다고 토로하는 이들에게, 정말 당신이 생각하는 문법이 그렇게 마냥 사소하기만 한 것인지, 정말로 중요한 것은 어쩌면 켜켜이 쌓이는 사소한 말들 위에 세워질 수 있는 것은 아닌지, 당신의 문법은 과연 안녕한지, 그리고 당신은 당신이 마주하는 무수한 타자의 문법을 정확하게 읽어내고 있는지, 나지막이 질문을 던진다.
김강희 부산외국어대 한국어문화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