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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진 칼럼] 세계유산은 희생 없이 절대 가질 수 없다

  • 강동진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
  •  |   입력 : 2020-07-02 19:33:58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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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경중을 떠나 어떤 경우든 그 일의 성사를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중요하거나 큰 일 일수록 대가는 커지기 마련이다. 일반적인 대가는 돈과 시간이겠지만, 사람의 생명과 같이 고귀한 것이 희생되기도 한다. 이러한 논리는 우리가 사는 도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 도시가 미래를 위한 새로운 변화나 혁신의 길을 걷고 싶다면, 또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어떤 것을 가지고 싶다면 이에 상응하는 희생과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세계유산’ 이야기를 하려 한다. 특정의 도시가 세계유산을 보유하려 할 때 발생하는 희생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유형으로 나타난다. 첫째는 유산을 지키고 살려내기 위한 시민의 사투에서 나오는 희생이다. 이 유형은 해당 유산에 대한 시민의 사랑과 애착에서 시작된다.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길고 먼 시간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한다.

둘째는 등재를 위해 관습이나 관행을 밀어낸 후 취해지는 새로운 도시관리 방식 선택과 투자에 따르는 희생이다. 이 유형은 보통 해당 도시의 행정과 전문가들의 의식 변화에서 시작한다. 물론 국가의 국토관리 철학이나 미래비전 변화도 포함된다. 이 또한 긴 시간과의 싸움과 함께 도전과 실행에 따르는 다양한 투자가 필수적이다.

우리나라는 14개소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인구 규모에 비하면 매우 많은 수치다. 1990년대 중후반에 등재된 석굴암·불국사, 창덕궁, 종묘 등은 식은 죽 먹기였다. 2000년대 들어 국가들 간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특히 근자에 들어 세계유산 등재는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이러한 현상은 강제동원이 자행된 군함도와 미쓰비시조선소가 포함된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을 등재시키려 온갖 권모술수를 동원하고 국제사회에 대한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 일본의 경우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리도 험한 일을 대범하게(?) 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세계유산 등재는 국격 상승이나 관광을 통한 경제효과만을 기대하진 않는다. 유산 하나로 국민과 시민의 마음 잡기는 물론 도시 체질까지도 바꿀 수 있다. 모든 경우가 똑같지는 않겠지만, 등재에 대한 집중 여부에 따라 도시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다는 얘기다. 마카오와 오시비엥침이 그랬고 함부르크와 시드니도 그랬다.

부산에서 ‘피란수도 부산유산’의 세계유산 등재 도전이 시작된 지 벌써 5년째에 접어들었다. 지금은 등재의 예선전이라 할 수 있는 잠정목록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현재는 조건부 통과 상태). 올해는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이자 피란수도 70주년이어서 그런지 여기저기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피란수도 부산유산이 기대감과 호기심 어린 눈빛을 받고는 있지만, 미래가 그리 밝게 보이진 않는다. 언론과 방송의 높아진 관심과 달리, 정작 등재를 향한 시민의 활력은 2016~17년보다 크게 축소돼 버렸다. 세계유산 등재는 결과가 목적이 아니고 등재를 위한 준비 시간과 과정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 시민 참여와 동행 없는 세계유산 등재는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데 부산의 현실은 점차 가혹해져 간다.

피란수도 부산유산은 9개소의 개별유산들로 구성됐다. 3개소는 보호구역을 가진 문화재이고, 3개소는 보호구역이 없는 등록문화재이다. 나머지 3개는 아무런 보호 조치가 없는 그냥 도시 내의 오래된 시설이나 동네일뿐이다. 전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경우다. 이런 열악한 조건 속의 유산을 등재하려 하니 참으로 힘이 든다. 이 사실에 대해 국가(문화재청)도 매우 난감해한다. 지금까지 개발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보호에 대한 노력은 등한시 하다 갑자기 세계유산 등재를 하겠다고 하니.

국가경제 발전과 빈곤 타파라는 과제 앞에서 어쩔 수 없었던 지난 상황은 이해되지만, 그 노력이 크게 부족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9개소 개별유산은 모두 토지 가격이 높은 도심에 있다. 세계유산 등재에는 유산 보호를 위한 완충구역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구역 규모가 크면 클수록 환영받는다. 부산시가 세계유산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제대로 발 벗고 나서야 한다. 문화유산과를 넘어 도시정책, 경제, 도시계획, 건축 등의 부서가 하나의 팀으로 움직이며 힘을 모으지 않는다면 등재는 요원한 일이다. 물론 전문가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그런데 전문가들의 용역이나 자문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제도와 체계가 고착되어 있고 생각이 움직이지 않는 이상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희생은 절대 손해가 아니다”는 명제가 있기 때문이다. 희생은 새로운 변화와 도약의 시작점이다. 피란수도 부산유산의 대부분은 지난 67년간 국가와 부산에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주며 희생된 애처로운 유산이다. 위기로 치닫던 전쟁의 역전 계기를 만들었고 백만여 피란민을 지키고 먹였던 그런 유산이다. 전쟁 뒤에도 수십 년간 그 역할은 이어져 왔다. 은혜를 받았으면 갚는 것이 기본이고 여력이 된다면 여러 배로 돌려주는 것이 도리다. 이제 우리는 그 희생을 돌려주어야 할 때이다. 보은의 때다.

최근 부산항 북항 재개발 지역의 제1부두를 놓고 논쟁이 한창이다. 부두를 관통하기로 했던 도로는 선형이 뒤로 변경됐다지만, 부두 안쪽 매립과 주변 개발 논쟁은 여전하다.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면서 세계유산까지 가지려 한다면 지나친 욕심이다. 일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거나 불확실성이 강하게 대두될 때는 당장 해치우지 않는 것이 올바른 길이다. 해결점이 나타날 때까지 미루는 것이 지혜다.

   
제1부두는 ‘계획적 방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유산은 불가역성(非可逆性)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훼손되거나 파괴되면 절대로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세계유산을 가지려 한다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절제’가 필요하며, 또한 등재를 위해 해야 할 일에는 오히려 ‘집중’이 요구된다. 그 균형을 찾아야 한다.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 어떤 길을 선택하든 부산이 강해지고 후손이 행복해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강동진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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