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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섬뜩한 현실, 더 섬뜩한 정치 /이경식

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받는 참담한 세상

표피적 정책 벗어나 보다 근본적 고민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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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받는다’(영끌 대출)니, 이보다 섬뜩한 말이 있을까. 악마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를 연상시킨다. 혹여 파우스트처럼 영혼을 파는 대가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금지된 지식을 얻을 수 있다면 모르겠다. 한갓 대출 따위에 영혼을 팔아야 한다니, 잘못돼도 너무 잘못됐다는 생각을 누를 수 없다.

하지만 이는 세상 물정과 담 쌓은 소리다. 지난 4년간 서울지역 아파트 매매가(중위가격) 추이를 보자. 2017년 5월 6억635만 원→2018년 1월 7억500만 원→2019년 1월 8억4502만 원→2020년 6월 9억2013만 원. 매년 1억 원가량 올랐다. 2017년 1622만 원→2018년 1888만 원→2019년 2094만 원→2020년 2154만 원. 반면 같은 기간 연간 최저임금 인상폭은 많아야 그 100분의 3도 안 된다. 맬서스 법칙이 따로 없다. 소득 증가는 산술급수적인데, 주택가격 증가는 기하급수적이다.

최저임금으로 서울에서 아파트를 장만하려면 43년 걸린다고 한다. 한 푼도 안 쓰고 모을 경우에 그렇다는 것이니, 집 마련이 거의 불가능한 셈이다. 그런데 전셋집이 귀해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어두컴컴한 반지하의 임대료가 1억 원이 넘는다. 월셋집에 살려니 비싼 월세 탓에 문화생활을 포기해도 적자가계를 면키 어렵다. 그래서 나온 게 ‘영끌 대출’이다. 주택담보·신용·보험상품 대출에 가족·친인척의 도움까지 합친, 자기 재산의 3~4배에 달하는 빚을 내 주택 매입를 시도한다.

수도권보다는 덜하지만, 지방의 주거 실태도 암담하긴 마찬가지다. 부산 해운대·수영·남구의 아파트 평균매매가격은 지난 1년 사이 3.3㎡(1평)당 10.8% 올랐다. 수영구의 상승폭은 19.5%나 된다. 이들 지역뿐 아니라 값이 낮은 곳도 3.3㎡당 1000만 원을 넘은 지 오래다. 수도권 규제에 따른 풍선효과에다 초저금리까지 겹쳐 부동산 시세는 계속 상승세를 탈 전망이다. 이러니 무주택자들이 더 늦으면 영영 집을 장만하지 못할 것 같은 위기의식에 젖는 건 당연하다. ‘영끌 대출’은 전국 보편적 현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 실직, 와병, 금리 인상 등 변수가 생기면 가계는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 인어공주처럼 몰락한다. 말보다 현실은 더 섬뜩하다.

그 현실은 정치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12월 청와대 비서실장은 두 채 이상의 주택을 가진 고위공직자들에게 한 채만 남기고 처분하라고 했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이행하지 않은 이가 재산공개 대상자(64명)의 28%에 달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 그들의 주택가격은 평균 7억3000만 원이나 올랐다고 한다. 권력은 일시적이나, 부동산은 영원하다는 ‘부동산 이데아론’을 신봉하는 것일까. “잘 살고 싶고, 돈 벌고 싶냐. 그럼 정부의 ‘약속’을 믿지 말고 청와대 참모들의 ‘행동’을 믿으면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비판은 정곡을 찔렀다.

청와대뿐인가. 더불어민주당은 4·15 총선 전 “집을 재산 증식수단으로 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176명의 민주당 국회의원 중 40명이 아직도 두 채 이상의 주택을 갖고 있다. 민주당 소속 서울시의원(102명)의 30%도 다주택자다. 게다가 그 일부는 중요한 부동산 정보가 오가는 도시계획 관련 위원회에서 활동 중이다. ‘고양이한테 반찬가게를 맡긴’ 꼴이다. 문 대통령이 올해 신년사에서 했던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겠다”는 약속이 무색해진다. 현실보다 더 섬뜩한 건 정치다.

부동산은 성장 분배 등 경제 전반을 관통하는 본질적 문제다. 나아가 영혼까지 팔아야 하니, 인생의 블랙홀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비본질적이고 표피적이다. 그 양상이 종합부동산세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2018~2019년 서울 아파트의 시세 증가액은 1억4305만 원인데, 종부세 증가액은 그 1%도 안 되는 67만 원에 불과하다. 쥐꼬리만한 세금을 물면 그 100배 넘는 이익을 챙길 수 있는데, 어느 누가 부동산 투기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식의 비본질적 대책을 20여 차례나 남발했으니, 어찌 시장에서 약발이 먹힐까. 심지어 부동산 투기꾼에게 꽃길을 깔아주기도 했다. 주택임대사업자로 등록만 하면, 재산세 양도세 종부세 소득세 등 각종 세금에다 건강보험료까지 파격적으로 깎아주는 특혜를 줬다. 이러니 주택을 공급하는 족족 임대사업자의 수중에 들어가고 무주택자에겐 주택 구입 기회가 돌아가지 않는 게 아닌가.

아무래도 문재인 정부에 부동산 문제 해결을 기대하는 건 무리인 듯하다. “국토보유세를 신설해 부동산 불로소득을 거둬 복지에 사용하자” “부동산 불로소득과 개발이익을 환수해 사유지를 사들여 공유지를 확충하자” 등등. 차기 대권주자들에게서 부동산 대책이 나오는 건 이런 연유에서다. 대증요법에서 벗어나 보다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논설위원 yis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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