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형대 위에서 가슴, 팔, 넓적다리, 장딴지를 뜨겁게 달군 쇠집게로 고문을 가한다. 그곳에 불로 녹인 납, 펄펄 끓는 기름, 지글지글 끓는 송진, 밀랍과 유황의 용해물을 붓고, 몸은 네 마리의 말이 잡아끌어 사지를 절단하게 한 뒤 손발과 몸은 불태워 없애고 그 재는 바람에 날려버린다.” 1757년 3월, 프랑스 법원은 루이 15세 왕을 살해하려 한 혐의로 체포된 다미엥에게 이같이 선고했다. 한 달 후 다미엥은 파리 그레브광장에서 판결대로 공개처형됐다. 잔인하게 벌받는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줌으로써 왕의 권위를 세우려는 ‘공포 정치’였다. 당시 형벌은 사형과 신체형이 주종을 이루었고, 요즘처럼 징역형은 존재하지 않았다. 감옥은 있었지만 죄인을 처벌할 때까지 구금하는 장소로 사용됐다.
징역형 위주의 근대적 감옥이 생긴 건 19세기 들어서였다. 그 사법제도의 기본원리가 ‘감시’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이를 ‘파놉티시즘(panopticism)’이라고 했다. 이 개념은 영국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고안한 원형감옥(파놉티콘)에서 유래했는데, 원형감옥은 중앙 감시탑에서 둘레에 있는 죄수들의 방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설계됐다. 24시간 감시 속에서 살아가는 죄수들은 감옥의 규율을 내면화해 마침내 스스로 자신을 감시하게 된다. 푸코는 이런 파놉티시즘을 “보다 효과적으로 처벌하기 위한 권력의 새로운 경제학”이라고 했다.
디지털 사회는 파놉티시즘을 한층 강화했다. 곳곳에 설치된 감시카메라, 전자주민카드, 전자건강보험증서 등 정보통신기술의 발달 때문이다. 그러나 권력자만 시민을 감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시민도 권력자를 감시할 수 있다. 이를 ‘역 파놉티콘(reverse panopticon)’ 또는 ‘시놉티콘(synopticon)’이라고 한다. 성범죄 아동학대 살인 등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디지털 교도소’가 그 하나다. 현재 디지털 교도소에는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 사이트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모 씨, 최근 미국의 손 씨 인도 요청을 거절하는 결정을 내린 판사 등 100여 명의 신상이 공개돼 있다. 미국 검찰은 아동 성착취물 배포 대가로 받은 자금을 세탁한 혐의로 손 씨를 기소한 상태다.
법원은 인도 거절 사유로 ‘사법주권’을 내세웠지만 사리에 어긋난다. 아동 성착취 처벌에 둔감한 우리 사법 현실은 도외시한 채 사법주권만 주장한다면, “부정의한 사법”이란 비판을 면키 어렵다. 디지털 교도소와 같은 시놉티콘이 더 늘어나야 하는 까닭이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