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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와인 한 잔] 비처럼 와인처럼

  • 최태호 부산가톨릭대 책임교수
  •  |   입력 : 2020-07-15 19:39:32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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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 당신이 떠나시던 그 밤에 이렇게 비가 왔어요.” 가수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의 가사와 같이 비는 우리를 추억으로 이끄는 감성코드가 있다.
겨울, 프랑스 마꼬네 지역 솔레트레 포도밭. 유명한 샤르도네 ‘푸이푸세’ 와인이 여기서 만들어진다.
높은 습도와 기압 저하로 마음이 우울해져 비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비 오는 날 땅에서 올라오는 흙냄새, 햇빛이 가려져 편안해진 밝기의 안정감, 창가를 스치는 빗방울 소리가 감성을 자극한다. 와인 한 잔 하기 좋은 날이다.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한 포도 재배에는 이상적인 기후조건과 날씨가 중요하다. 충분한 습도와 온도가 있어야 하고 포도 성장주기와 날씨가 잘 맞아야 한다. 겨울철 포도나무가 죽을 정도의 강한 서리는 안 좋지만, 포도나무의 성장을 억제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을 정도로 추워야 한다. 또한, 비가 충분히 내려 토양에 적당한 수분을 공급해야 한다. 봄에는 온화한 날씨에 부드러운 비가 내려야 포도나무 성장이 촉진되며 꽃이 피는 동안 따뜻한 날씨가 계속돼야 한다. 여름에는 온도가 높고 비가 적당히 내려야 열매가 많이 열리고, 가을에는 건조한 날씨가 오래 이어져야 포도가 잘 익는다.

포도 재배 가능지역으로 위도 30~50도, 연평균 온도 10~20도, 열매가 익는 시기 최소 1500 시간의 일조량, 연평균 최소 500mm 강수량, 물이 잘 빠지는 토양 등을 꼽는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미국 호주 등 잘 알려진 와인 생산국과 최근 인기를 끄는 슬로베니아, 몰도바 같은 동유럽 지역이 이에 속한다.

한국처럼, 여름에 비가 집중되는 지역은 습한 계절풍의 영향으로 구름 입자가 100만 개 정도 모여 무거워지면서 비가 된다. 포도 재배 가능 지역에 속하지만, 와인 양조용 포도를 기르는 데 어려움이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장마철 집중호우다.

유럽 북쪽에 있는 포도밭들은 기온이 낮고 습도가 높아, 산도가 높고 알코올 도수는 낮은, 가볍고 산뜻한 스타일의 와인이 생산된다. 반면, 무덥고 건조한 남부지방은 고온과 강수량 부족으로 포도가 잘 익어 알코올 도수가 높고 풍만하며 산도 낮은 와인이 난다.

같은 지역이라도 강수량과 날씨에 따라 와인 스타일이 달라질 수 있다. 보르도 지방의 경우 1977년 내린 폭우와 일조량 부족으로 포도가 잘 익지 않아 가볍고 산도 높은 와인이 만들어졌지만, 1990년에는 더운 여름의 충분한 일조량으로 포도가 잘 익어 최고의 와인이 생산됐다.

농경시대, 비는 귀중한 손님 같은 존재였다. 가뭄에 힘든 농부를 울먹이게 했던 비처럼 와인은 우리를 울컥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사랑을 주지 못하는 사람은 사랑받을 수 없는 것처럼 와인을 마셔보지 못한 사람은 와인의 매력을 모른다. 비처럼 와인처럼, 감동을 주는 소중한 친구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부산가톨릭대 와인전문가과정 책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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