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 합의는 비밀리에 서로 합의된 약속이다. 공개된 계약서나 합의문에 드러난 문구와 별개로 쌍방 간 이뤄진 은밀한 협상 내용을 말한다. 효력도 인정된다. 협상을 이끄는 데 윤활유 역할을 하지만, 무리수가 동원됐다면 동티 나기 일쑤다.
실타래처럼 꼬인 난제를 단시간 내 풀기 위해 이면 합의를 통한 단 한 방의 협상이 효과적일 때가 있다. 하지만 밀실 교섭 내용의 폭로 시점이나 주어진 상황에 따라 만만찮은 파장을 일으킨다.
외교 문서 내용 등은 비밀 보존 기간인 30년, 또는 40년이 지나면 일반에 공개된다. 보통 역사적 평가로 마무리된다. 때로는 현 시점과 이면 합의가 이뤄진 당시의 이해 가치가 충돌한다.
최근에는 역대 정부의 이면 합의서 내용이라는 게 수시로 폭로되고 있다. 2017년 12월에는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12월 28일 이뤄진 한일위안부 합의 때 우리 정부가 위안부 관련 단체들을 설득하는 노력을 하고, 해외 ‘소녀상’ 건립을 지원하지 않는다고 약속한 내용 등을 담은 이면 합의가 존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현 정부 초기에 전 정부의 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한 이면 합의 내용이 2년 만에 공개된 셈이다.
이번에는 2000년 4월 남북정상회담 과정에서 이뤄졌다는 남북 간 이면 합의를 놓고 논란이다. 미래통합당이 그제 국회에서 열린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 청문회에서 공개한 ‘남북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서’다. 통합당은 총 30억 달러를 북한에 보낸다는 내용을 담은 이 문서가 2000년 4월 8일 작성됐으며, 공식 문서인 ‘4·8 남북합의서’의 이면 합의서라고 주장하고 있다. 문건에는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이었던 박 후보자와 북한 아태 평화위원회 송호경 부위원장의 서명이 있다 .
이에 대해 박 후보자는 먼저 “기억이 없다”고 했다. 이후 “사인하지 않았다”고 했다가 “위조한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해 야당의 반발을 샀다. 결국 국회 정보위원회가 어제 야당 불참 속에 박 후보자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채택했고, 대통령이 이를 재가했지만 뒷맛이 씁쓸하다.
야당이 ‘믿을 수밖에 없는 전직 고위 공무원 출신’으로부터 입수한 20년 전 남북정상회담 이면 합의 내용의 진실은 밝혀지기 마련이다. 앞으로 또 어떤 내용의 이면 합의가 불거져 파장을 일으킬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국가의 이면 합의 내용이 시도 때도 없이 논란을 촉발한다면 문제다. 분명 정상은 아니다.
강춘진 논설위원 choonji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