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 사회는 성과에 대한 나름의 보상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 핵심은 과학적 산물에 대한 동료의 인정이다. 이렇게 얻어지는 과학적 명성도 태생적으로 불평등을 내재한다. 과학의 진보에 기여하는 발견은 극소수의 과학자에 의해 이뤄지고, 극소수의 과학자가 과학적 생산물의 절반 이상을 생산하는 구조다. 로버트 머튼은 이런 내재적인 불공평함이 오히려 과학을 진보할 수 있게 한다고 했다. 그는 ‘스타 과학자’ 역할은 과학이 원활히 작동하기 위해 필수적이며, 젊은 과학자들은 그들을 잘 활용해 성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과학자들의 생산성에서 나타나는 불평등은 ‘후광효과’의 개념과도 맞물려 있다. 이미 학계에서 명성을 지닌 연구소나 대학에 소속되는 것만으로도 자신을 드러낼 기회와 더 많은 인정으로 이어지는 기회가 제공된다는 것이다. 과학계에도 학벌이 존재하고, 이런 불평등에 대한 지속적 추구는 누적되어 나타난다. 과학자 사회도 이런 지독한 불평등을 ‘발전을 위한 필요악’으로 인정해왔다. 수많은 ‘보통 과학자’의 존재는 이런 체계에서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물이다.

문제는 과학 자본이 순수한 동료의 인정에 의해서만 작동한다는 ‘순수성’에 끊임없이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이다. 순수한 과학자본의 이면에는 공공연한 ‘제도적 권력’이 존재하고, 이로 인해 실력으로만 진검승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은 점점 더 축소되고 있다. 내재한 과학자본의 불평등은 제도적으로도 점점 더 심화된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동안 과학자 사회는 과학계를 움직이는 불평등의 원리에 크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승자독식의 보상시스템이 결과적으로 뛰어난 과학적 발견에 이르고 인류 전체에 도움이 된다며 정당화했다.

이러한 정당화는 과학적 평가가 합리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암묵적 전제가 기능하고 있을 때만 가능하다. 점점 더 심각해지는 연구비 경쟁에서 경력 초기의 과학자가 겪는 제도적 불평등이 한계에 봉착했다. ‘학위공장’이라는 오명을 받으며 박사학위자를 양산한 현 상황에서 제도적 공정성만 믿고 경력을 이어나가는 게 거의 불가능해졌다. 가파르게 쌓여가는 경력 피라미드에서 공정한 경쟁은 허울 좋은 이야기다. 이런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는 당연히 신진 연구자에게 돌아간다.

시대가 변했다. 과학은 이제 19세기 몇몇 유한계급이 취미 삼아 즐기던 수준이 아니라, 국가가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고비용의 학문체계로 진화했다. 지난 10년간 국가 간 불평등은 완화됐고, 이런 과정에는 세계화와 인터넷 등의 영향이 지대했다. 하지만 대학 또는 연구기관 사이의 불평등은 더욱 심화하였고, 연구자 개인 사이의 불평등은 아주 심각해졌다. 대학원생은 연구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아주 기초적인 생활비 정도를 지원받으며 연구한다. ‘박사후 연구원’은 평균적인 박사 학위자의 연봉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의 비정규직이다. 대학원으로의 인재 유입이 줄어드는 가장 명확한 이유다. 정규직이 되어도 한국 과학자의 연봉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낮다. 한국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본 사람들이라면 이 낮은 연봉의 기저에 과학자에 대한 한국 사회의 낮은 대우가 깔려 있다는 걸 몸으로 깨닫게 된다.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이들에 비하면 과학자들의 연봉이 불평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상대적 박탈감은 같은 직업을 지닌 사람들 사이의 불평등에서 기인한다. 성공에 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과학계에서 이미 성공한 승자를 돈이 얼마가 들더라도 영입하려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스타 과학자 영입 경쟁이 과학자 간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소득 양극화가 계급장벽을 만들어 낼 것은 자명하고, 과학자도 일부 계급의 전유물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렇게 다양성을 잃은 과학계가 어떤 사회로 변할지 모른다. 과학자사회의 불평등과 계층화가 폐쇄성의 문제를 초래하고, 과학이 제도적으로 발전하기 위해 필수적인 유연성에 해가 된다면 ‘지속 가능한 과학지식의 진보’에 필연적인 문제로 작용될 것이다.

부산대 생명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