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없이 탄생한 작품이 있을까. 명작은 수많은 습작의 최종 결과물이다. 화가에게 습작은 힘을 뺀 그림이다. 연습 그림이기에 자유분방하지만, 완성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존 컨스터블이 그린 이 나무 그림은 습작인데도 웬만한 작품보다 완성도가 더 뛰어나다. 사진처럼 정교한 사실적인 묘사, 과감한 구도와 깊은 색채 등 이 모든 것이 처음부터 의도된 것 같다. 그는 어떻게 습작마저도 작품처럼 그렸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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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컨스터블, 느릅나무 몸통 습작, 1821년경. |
컨스터블은 유년 시절 살던 영국 서퍽 지역의 풍경화로 유명하다. 동시대 화가들이 웅장한 역사화나 신화를 주제로 그릴 때, 그는 집 주변 풍경을 담았다. 기념할 만한 위대한 건축물도 빼어난 절경도 없는 평범하고 소박한 시골 풍경이었다. 그는 이상화된 풍경이 아니라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대상의 진실된 모습을 그리고자 했다.
이 그림의 모델 또한 그가 런던 북부 햄스테드에 살던 시절, 늘 지나다니며 봤던 집 근처 들판의 느릅나무다. 화가들은 보통 습작할 때 연필이나 펜, 수채화를 이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아직 그림 주제나 구도, 색상 등이 결정되지 않았기에 처음부터 유화 작업을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 그림은 습작인데도 유화로 제작됐다. 마무리 단계에서 사용할 기술과 도구를 스케치 단계에서 쓴 것이다. 여느 풍경화가들처럼 그 역시 야외에서 습작한 뒤 작업실로 돌아와 캔버스에 옮겨 그렸는데, 습작마저도 본 작업처럼 정성을 쏟은 건 자연에서 관찰하고 느끼고 경험한 것을 작업실에서도 단절 없이 지속되게 하려는 의도였다. 또한 변화무쌍한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숭고한 자연의 색과 육중하고 투박한 나무 표면의 촉각까지 생생하게 표현하려면 흑백의 연필이나 경쾌한 수채화로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는 자연이 가진 ‘아름다움의 복합성’을 표현하기 위해 ‘천 가지 녹색’을 사용했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그림에는 정말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녹색이 쓰였다.
눈에 쉽게 보이지는 않지만 나무는 빛과 바람, 눈과 비를 맞으며 한자리에서 끊임없이 변하고 성장한다. 아침의 나무가 오후의 나무와 같을 리 없다. 가까이서 오래 관찰하지 않으면 절대 볼 수 없는 자연의 진실된 모습이다.
“풍경화가는 겸손한 마음으로 들판을 걸어야 합니다. 오만한 자에게는 자연의 아름다운 본성을 보는 것이 절대 허락되지 않습니다.” 평생 자신이 사는 곳의 풍경을 사랑하고 그렸던 컨스터블이 한 말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포착하기 위해 그는 얼마나 오랫동안 걷고 관찰하고 습작했을까. 명작이 된 이 습작은 화가의 겸손한 태도와 치열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그의 나무 그림을 본 화가 윌리엄 블레이크가 외쳤다고 한다. “이건 그림이 아니라 영감(靈感)이다!”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