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말, 조금은 엉뚱한 충격(?)에 휩싸였다. 2학년 과목의 강의평가 결과가 강의인생 중 최저점을 기록한 것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줌(zoom)이라는 실시간 온라인 교육을 엉겁결에 하게 되었고,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학생들이 내린 평가 숫자가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였나. 뭐가 부족했나. 스스로 내린 문제의 근원은 이것이었다. 전공 선택 후 첫 학기를 함께 보낸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에 미안했고, 자괴감마저 들었다. 줌은 아이들과의 친밀한 교감을 허락하지 않았다. 관계가 깨져 버린 것이었다. 대학교 2학년을 영어로 ‘소포모어(sophomore)’라 부른다. 미숙함이란 의미가 숨어있다. 2년차 증후군이란 말도 있다. 그런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챙겨도 부족할 판에, 아이들의 얼굴도 목소리도 떠올릴 수 없으니 최저점을 받아도 마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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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서상균 |
코로나 사태와 연결된 개인적인 에피소드였지만, 장기화되고 있는 코로나는 국가와 국민 모두를 혼돈스런 상황으로 나아가게 하고 있다. ‘코로나 후’라는 말이 등장하고, 여러 학회들과 공공기관에서 세미나와 포럼을 개최하며 분주히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우리는 분명 코로나를 이겨낼 수 있다” “코로나 후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올 가을에 더 센 슈퍼코로나가 도래할 수 있다” 등이 일반의 결론들이다.
다소 황망한 미래 예측 속에서도, 코로나를 겪으며 필자가 체험했던 2학년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처럼 우리는 ‘일상의 소중함’에 대한 감사를 발견 중이다. 바쁘게, 또 거칠게 살아왔던 시간 속에서 만나지 못했던 삶의 재발견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언론과 방송을 오리내리는 전세대란 논쟁과 주택공급 대책들을 듣고 있자면, 엄청난 대가를 치르며 발견하고 쌓아가고 있는 삶의 교훈들을 과연 코로나 후에도 지속시키거나 더 확장시켜 갈 수 있을지 강한 의문이 든다. 전염병으로부터 이렇게 당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우린 코로나 이전의 생각과 판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처해 있는 우리 상황을 잠시 둘러보자. 코로나의 시작과 초기 확산에 대한 중국의 책임론은 일단 차치하고, 창궐의 이유와 그것도 도시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 도시에서는 모여 살아야 경제적 효율이 올라간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과하게 모이거나, 환경 용량을 넘어서는 개발과 집중은 반드시 폐단을 부른다. 코로나 후를 격하게 논하면서도, 우리는 아파트의 양 늘리기에 대한 집착은 버리지 못하고 있다. 계속 왜 지어야 하고, 왜 계속 산을 깎고 바다를 매립해야 하고, 개발 이익을 위해서라면 왜 물불을 가릴 수가 없는지 선뜻 이해가 되질 않는다. 인구가 줄어드는 축소시대인데도 우리는 늘 같은 방향으로만 걸어간다.
코로나 창궐의 핵심적인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밀도 상승’을 부추기는 일을 서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전세 값이 수천만을 넘어 수억씩 갑자기 오르는 도시와 지역을 정확히 알고 싶다. 난무하는 ‘나’ 중심의 국민 요구들과 단기 대응에 급급한 국가 정책들이 코로나 시대가 요청하는 삶의 지향점과 과연 얼마나 어울리는지 묻고 싶다. 개인의 생활 여건은 분명 좋아질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생각들은 전체의 삶이나 미래도시의 관점에서는 매우 불리할 수밖에 없다. 전 국토 차원에서의 균형 잡힌 밀도 배분에 대한 근원적인 발상 전환 없이, 수도권과 대도시 중심의 아파트 양 늘리기 정책은 더 세고 강한 전염병 창궐의 이유가 될 수 있다.
8월 중순이 되었는데도 전국 곳곳에서 폭우와 홍수, 그리고 수해가 그치질 않고 있다. 열대 지방에서나 만나던 스콜(squall)이 이제 일상이 되어, 홍수와 수해의 발생지점에 대한 예측조차 제대로 못하는 실정이다. 자연을 얕잡아보고 파괴를 일삼으며 적당히 살아왔던 우리를 자연은 마치 조롱하는 듯하다. 갈 곳 잃은 빗물들이 콘크리트에 갇혀 범람하고 또 믿었던 콘크리트들은 깨져서 국민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유일한 방향은 ‘개발이 아닌 관리’다. 그것도 ‘지속가능한 관리’다.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기후변화를 고려하지 않는 좁고 짧은 판단과 적당한 개발은 결국 화만 부를 뿐이다.
코로나 백신만 개발되면 과연 ‘상황 끝!’이 될까. 그때 우린 코로나 이전으로 온전히 돌아갈 수는 있을까. 물론 IT와 결합된 배달 문화와 온라인 산업의 발달과 이로 인한 파생산업들이 확장되고,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경제구조 전반의 재편이 진행 중에 있다. 기존 사회 관계망이 파괴되고 새로운 시스템도 구축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다시 반문해본다. 우리는 코로나 이전으로 온전히 돌아갈 수 있을까. IT와 ICT로 불리는 정보통신기술 분야만의 변화로 그것이 가능할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의 근본적인 변화다. 전개되는 사태의 시급함을 보면 분명 우린 뼛속까지 철저히 변해야 하는데, 추구하고 있는 것은 이전과 그리 달라지지 않아 보인다.
현대사회가 제공하는 편리함과 안락함 뒤에 숨어 도사리고 있는 온갖 비수들을 찾아내어 그들의 공격을 함께 이겨내야 한다. 필자를 포함한 기성세대는 그럭저럭 살다 사라질 것이다. 문제는 20대 이하의 아이들과 그 다음 세대들이다. 이들이 살아갈 세상에는 모든 후손들이 전염병에 걸릴 수 있고 생명을 빼앗기는 재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심정으로 우리의 정신가치와 체질을 바꾸어야 한다.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땜빵하고 모면하는 일에만 몰두하지 말고, 또 당장 눈앞의 것과 물질적인 이익과 성공에만 아우성치지 말고, 함께 벌어 함께 나눌 수 있고, 이 땅의 모든 다음세대들이 조금이라도 평안히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일에 집중하는 것이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야하는 최소한의 도리라 생각한다. 이를 위한 선택들이 쌓이고 쌓여갈 때만이 더욱더 심하고 예상치 못하는 재난을 몰고 올 기후변화와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기억하고 되새기자. 우리에게는 더 이상의 취사선택권이 없다는 사실을.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