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첫 제정된 우리나라의 근로기준법은 상당히 선진적이었다. 이 법에는 주휴일과 공휴일, 12일의 월차휴가, 3~8일의 연차휴가, 연 12일의 생리휴가 등 유급휴일이 명시돼 있었다. 남성의 총 유급휴일은 70~80여 일이며, 여성은 이보다 12일 더 많았다. 당시는 물론 지금도 세계에서 휴가문화가 가장 발달한 프랑스를 능가하는 수준이다. 프랑스 공기업 노동자의 현재 연평균 유급휴일은 66.5일이다.
그런데 그건 ‘무늬뿐인 법’이었다.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자살한 전태일의 폭로를 통해 확인했듯이, 1970년대까지 고용주의 서슬에 짓눌려 유급휴일이란 말조차 꺼내기 힘들었다. 긴 세월 법전에 갇혀있던 유급휴일이 현실화하기 시작한 건 노동쟁의가 본격화한 1980년대 들어서였다. 그리고 오늘날 적잖은 유급휴일을 보장받으며 ‘일과 삶의 균형’(워라벨)을 추구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는 정규직에 국한된 노동복지일 따름이다. 비정규직, 특히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못 받는 특수고용직인 택배 노동자는 아직도 전태일과 같은 살인적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쇼핑이 늘면서 배달 물량이 20~30% 급증해 하루 15~16시간 이상 일한다. 그러다 보니 올 상반기에만 과로사 7명을 포함해 9명이 산업재해로 숨졌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택배 노동자의 올해 산재사망률은 지난 8년 평균치(0.02%)의 5배가 넘는 0.11%를 기록할 전망이다.
택배 노동자에게 휴가는 금단의 꿈이다. 휴가를 가려면 웃돈을 주고 대체인력을 직접 구하거나, 택배 대리점에 배달 수수료의 2~3배에 달하는 대체 배송비를 지불해야 해서다. 그런 택배 노동자들이 14일 쉰다. 전국택배노조와 CJ대한통운 등 국내 5대 택배사가 합의한 ‘택배 없는 날’이다. 1992년 한진이 택배 사업을 시작한 뒤 처음 갖는 ‘28년만의 휴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휴가는 무급이다. 다른 사람보다 더 오래, 더 힘들게 일한 대가로 28년만에 획득한 휴가가 무급이라는 건 너무 잔인하다. 이런 신분제나 다름없는 노동의 양극화를 방치하면서 인권을 거론한다는 건 위선이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택배 노동자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택배 주문을 자제하자. 나아가 그들이 정규직처럼 유급휴가를 즐길 수 있도록 관련 법과 제도를 개혁하는 데 힘을 모으자. 그렇게 나를 비워 모두의 행복을 도모하자. ‘비움’이란 뜻의 바캉스(vacance) 어원처럼 말이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