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전, 아침이면 대남방송이 들린다는 최전방 철원으로 향했다. 군사분계선이 지척에 있는 김화고등학교의 강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억수 같은 비를 뚫고 천근만근 무거운 몸으로 도착한 학교는 고향처럼 포근하고 평온했다. 인근 읍이 장마로 침수된 지역이라는 사실이 이상할 정도였다.
필자가 지난해 10월에 출간한 ‘골목상인분투기’라는 책을 읽은 학생들이 초대하는 강연이라고 해서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사실 강연 요청을 승낙한 뒤 고교생들과 소통이 가능할지 가늠하기 어려워 두려웠다. 전문 강사가 아닌 만큼 심적 부담은 내리는 폭우만큼이나 컸다.
강연 시나리오를 짜면서 학생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이해도와 집중력을 높일 수 있을지를 깊이 고민했다.
강의 1부는 ‘자영업자로 사는 삶’이란 주제를 통해 자영업자들의 삶을 생생하게 전하려 했다. 자영업 현황과 관련한 자료는 진학을 앞뒀거나 사회에 진출할 시점인 학생들에게 쓸모있는 맞춤형으로 제시해야 했다. 창업한 지 5년 만에 절반이 폐업하는 자영업 현실을 알려주고, 청년창업을 권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과연 괜찮은지 우려를 제기하고 싶었다.
군 복무 뒤 복학을 앞두고 청년창업을 하겠다던 아들의 강아지 옷 사업 도전기를 사례로 들었다. 필자의 아들은 강아지 옷을 만들어 판매한다고 선포했다. 하지만 아들은 강아지 한 번 키우지 않은 반려동물 문외한이었다. 강아지 한 번 키우지 않았으니 자신의 아이템이 얼마나 무모한 도전인지 몰랐다. 사업을 하려면 그 생태계를 잘 알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평생 사업을 한 아내는 필사적으로 아들을 다그치고 나무랐지만, 막무가내였다. 아들의 꿈을 무턱대고 짓밟을 수는 없었다. 그러기엔 아들의 모습이 너무 진지했다.
“사업계획서를 제대로 만들어 오렴. 석 달 안에 제출해 80점 이상이면 사무실과 기기 등을 1년간 지원해줄게.”
이후 아들은 신이 나 도서관을 다니며 자료 수집에 에너지를 쏟았다. 두 달쯤 지나 이 예비 청년창업가를 대학가에서 만났다. 자신 있게 내민 사업계획서를 받아 든 순간 많이 실망스러웠으나 표를 내지 않고 차분히 SWOT 분석을 토대로 물었다. 아들이 창업하려는 기업의 강점(Strength)·약점(Weakness)·기회(Opportunity)·위협(Threat)을 분석하도록 했다
“자기자본 규모와 수익성 구조가 어떻게 될까? 예상되는 경쟁 사업자와 온라인 유통판매망과 비용은?” 몇 가지 질문에 아들은 말문이 막혔다. 이후 자료를 수집하더니 어느 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아버지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닫게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아들은 한 달간 자료를 모으면서 사업성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이 사례를 들려주니 학생들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호응하며 맞장구 쳤다. 또래 이야기라 더 마음이 가는 모양이다.
강의 2부는 ‘나의 삶에 적용하기’라는 주제로 ‘백종원의 골목식당’ 관련 동영상을 보고 SWOT 분석을 응용해 학생의 장래 직업을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자기 장단점과 외부적 기회·위협에 대응해 전략을 마련해 보자는 취지였다. 학생들은 매우 진지했으며 자신의 역량을 찾느라 여념이 없었다. 질의응답 시간도 10분 주어졌는데 수많은 질문지를 보면서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 야속하기만 했다. 눈에 띄는 질문은 지역언론을 왜 지켜야만 하는지, 그렇다면 자신들의 역할은 무엇인지 였다. 특히, 대기업이 무조건 좋다고 여겼지만 강의를 통해 대기업에 의한 주변 상권의 피해가 생각보다 크다는 걸 깨달았다는 한 학생의 표현에 앞으로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했다.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아무리 외쳐봐도 지역 주민이나 소비자 의식이 따르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 대기업 짝사랑에서 동네가게를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학생들의 이런 사고전환은 어쩌면 새로운 미래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필자는 이 강연을 통해 미래세대인 학생이 지역에 관심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산시교육청의 깊은 고민이 절실히 필요하다. 학생이 지역경제에 관해 이해하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 그 시작이다.
㈔중소상공인살리기 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