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이 미래통합당에 잠시나마 똬리를 틀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그곳에 오래 머물진 못할 것이다. 기본소득 담론은 그것의 핵심 특성이 보수 야당의 정체성과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제도 자체의 형평성과 가성비가 너무 낮아 국민적 지지를 모으는 데도 결정적 한계를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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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서상균 |
그럼에도 지난 수년 동안 정치적 지지에 목말라 있던 미래통합당은 김종인 위원장을 선두로 ‘독이 든 냉수’를 단숨에 마셔버릴 기세다. 그 독은 바로 기본소득 포퓰리즘이다. 지난 8월 13일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회 산하 정강정책개정특위는 기본소득을 ‘정강정책 1호’로 명시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각종 기본소득은 ‘기본소득 담론’의 본질과 무관한 것들이다. 그렇다면 진짜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이 부분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기본소득 담론에서 벗어난 ‘가짜’들을 ‘가짜 기본소득’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가짜 기본소득’ 주창자들의 대중 기망(欺罔)을 방관하는 꼴이 되고 만다. 특히 일부 정치인 또는 정치세력이 정치적 이득을 위해 사실상 국민을 속이는 경우라면, 이는 최악의 정치 포퓰리즘이다. 요즘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각종 기본소득은 대부분 ‘가짜’이므로 정치 포퓰리즘에 속하는데, 이번에 미래통합당이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기본소득도 이 범주를 벗어나진 못할 것 같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살펴보자.
기본소득 담론의 핵심 내용은 두 가지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살펴야 한다. 하나는 기본소득 지급을 위한 재원 마련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이렇게 조성된 정부 재정의 지출 측면이다.
첫째, 재원 마련 측면이다. 기본소득 담론은 공유부(자연·환경·자원·문화유산 등의 공유자산)의 존재와 의미를 강조하는데, 공유부가 ‘공동의 상속자산’이므로 사회구성원 모두는 각자 몫을 나눠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본다. 이를 위해 국가가 공유부에 대한 적극적인 과세(토지세, 환경세, 탄소세 등)를 추진해 소요 재원을 마련한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재원이 턱없이 부족하므로 개인소득세뿐만 아니라 자본에 대한 과세(자본이득세, 부유세, 법인세, 상속세 등)도 누진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둘째, 재정 지출 측면이다. 기본소득 담론은 개인소득·자본에 대한 누진적 과세와 공유자산에 대한 과세를 통해 마련한 정부 재정의 상당 부분을 모두에게(보편성) 똑같이 나눠주자는 건데, 개인에게(개별성) 조건 없이(무조건성) 매달 지속적으로(정기성) 기본 생활이 가능할 만큼 충분히(충분성) 현금을 지급하자는 주장을 편다. 이들 요건 중 하나라도 위배되면 기본소득이 아닌데, 이럴 경우 ‘모두의 실질적 자유’ 구현이라는 기본소득의 비전에서 멀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래통합당의 기본소득은 어떨까? 기본소득 담론의 핵심 내용에 잘 부합할 수 있을지를 위의 두 가지 측면에서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재원 마련 측면이다. 기본소득 담론을 따르자면 공유자산인 토지에 누진적 과세를 하고, 토지 관련 불로소득을 철저하게 환수하고, 기업들에게 상당 수준의 환경세와 탄소세를 부과해야 한다. 그뿐 만 아니라 개인소득세, 자본이득세, 부유세, 법인세, 상속세 등에 대한 누진적 증세도 추진해야 한다. 그런데 미래통합당이 취해온 조세재정정책 기조는 감세와 작은 정부였고, 미국 공화당의 신자유주의 노선과 맥락이 같았다.
그럼에도 기본소득 담론을 좇아 큰 정부로 가겠다면, 유럽 복지국가의 중도 우파 정당 수준으로 정치적 환골탈태를 감행해야 한다. 그러려면 세금폭탄이나 종부세 반대는 거론하지 말아야 하고, 누진적 증세를 지지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복지국가로 가는 길은 더욱 순탄해질 것이지만, 미래통합당의 근본이 이렇게 변할 것이라고 믿을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둘째, 재정 지출 측면이다. 재정을 어떻게 사용(배분)할 것인지가 중요한데, 기본소득은 위의 5가지 요건에 부합하도록 모두에게 현금을 똑같이 나눠주자고 주장한다. 문제는 보편적 복지(사회보장 원리)에 비해 형평성·가성비가 지나치게 낮다는 것이다. 즉, 기본소득은 보편적 복지보다 ‘복지 효과’ ‘경제 효과’ ‘소득재분배 효과’가 훨씬 작다. 이는 실업·질병·산재·은퇴 등의 각종 사회적 위험과 복지 필요에 직면할 확률이 경제사회적 약자가 더 높음에도, 기본소득은 소액의 현금을 모두에게 똑같이 나눠주기 때문이다. 미래통합당은 형평성과 가성비가 형편없는 기본소득을 수용하진 못할 것이다. 주요 선진국 중 어느 나라도 기본소득 도입을 진지하게 검토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은 재원 조달의 높은 진보성이 특징인데, 이는 미래통합당의 노선과 특성에 부합하지 않는다. 또 기본소득은 재정 지출의 낮은 형평성과 가성비로 귀결되는데, 어느 정치세력이라도 이 길을 선택해선 안 된다. 그런데 왜 갑자기 미래통합당은 기본소득을 ‘정강정책 1호’로 명시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을까. 정치적 지지를 획득하려는 욕망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지 정치로 국민을 속이는 기본소득 정치 포퓰리즘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결국, 실체 없는 정치적 유령은 머지않은 장래에 정치권에서 거품처럼 사라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기본소득 담론에서 벗어난 온갖 종류의 정치적 ‘가짜 기본소득’들로 인한 낭비와 부작용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것들은 일부 인구만을 대상으로 큰 예산을 들이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될 개연성이 큰데, 청년 기본소득(특정 연령), 농민 기본소득(특정 직업), 생애선택 기본소득, 푼돈 기본소득 등이 여기 해당한다. 이런 가짜 기본소득은 연간 10조 원 안팎의 작은 재정으로 기획될 가능성이 커, 보편적 복지와 재정적으로 경합하기에 그만큼 보편적 복지국가의 길은 멀어진다. 지난 10여 년 달려온 길을 허망한 정치적 유령 때문에 지체하거나 포기할 순 없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제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