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캐치볼을 한다. 물론 혼자서는 아니다. 두 사람이 캐치볼을 한다. 한 사람은 오십 대 초반. 다니던 회사 사정으로 두 달째 무급휴직 중이다. 그리고 언제까지 무급휴직 상태로 대기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한 사람은 사십 대 후반. 평생 정규 직장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언제까지 변변한 직장도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장담할 수가 없는 삶이다. 말이 좋아 프리랜서지 내일 당장 일거리가 끊어져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삶.
그러고 보니 두 사람 다 막막한 상태에서 캐치볼을 하러 나왔다. 교외의 한 공터다. 재개발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 잠깐 놀려놓고 있는 땅. 오늘은 여기서 캐치볼을 한다. 어찌 보면 팔자가 좋아 보인다. 아득바득 시간을 쪼개가며 무슨 일이라도 벌여야 할 판에 한가롭게 교외로 나가 캐치볼이나 하고 있으니.
마음은 막막한데 몸은 또 근질근질하다. 이것저것 복잡한 생각을 하기 싫은 탓도 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몸이라도 움직이자. 몸이라도 움직일 요량으로 챙겨온 야구공과 야구 글러브. 모두 무급휴직 중인 사람이 챙겨온 것이다.
평소 야구 관람하는 걸 즐기는 그는 한때 사회인 야구팀에서 주전 포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직접 공을 만지지 못하면 야구장에 가서 ‘직관’이라도 해야 하는데, 역병이 도는 이 시절에는 그마저도 쉽지가 않다. TV로라도 야구 경기를 볼 수 있는 게 감사할 따름이다.
평소 운동이라곤 걷기와 숨쉬기 말고는 전무하다시피 한 프리랜서는 역병 때문에 일거리가 확 줄었다. 집에서 가만히 숨 쉬고 앉아 있는 것도, 어쩌다 공원을 산책하는 일도 지겨워질 때쯤 오래간만에 연락이 닿은 선배와 이렇게 몸이라도 움직여볼 요량으로 캐치볼을 하러 나왔다.
캐치볼은 단순한 운동이다. 오른손잡이라면 오른손으로 공을 던지고, 글러브가 있는 왼손으로 공을 받으면 된다. 한 가지 주의사항이 있기는 하다. 공을 던지기 전에 상대방이 이쪽을 보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 그래야 안전하게 공이 오갈 수 있으니까.
잘못 맞으면 뼈에 금이 갈 수도 있는 공이지만, 잘만 받으면 글러브에 착 감기는 맛이 다른 어떤 공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쾌감을 주는 공. 포구 지점을 향해서 제대로 던지는 것도 캐치볼의 제맛이지만, 제대로 받아낼 때 글러브와 공이 순간 접착하듯이 딱 맞아떨어지는 촉감도 캐치볼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무언가 내 손에서 빠져나간 것이 다시 내 손으로 들어와 안착하는 듯한 느낌. 이 느낌이 좋아서 빈터에 나온 두 사람은 조금씩 거리를 멀리하며 공을 주고받는다.
멀어질수록 둘 사이의 대화는 짧아지고 드물어지고 희미해져 간다. 대신 상대를 향해 공을 던질 때의 감각과 날아온 공을 받을 때의 감각과 그리고 큰 포물선을 그리며 갔다가 되돌아오는 공의 궤적만 남아서 둘 사이를 채운다.
하기야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말하자니 푸념밖에 안 나오고 푸념 아니면 한숨밖에 안 나와서 골방에서 담배나 피울 사람이 새삼 밖에 나와서까지 한숨과 푸념을 늘어놓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내 몸에서 나가는 것은 공 하나로 충분하고, 다시 들어오는 것 역시 공 하나면 충분하다. 글러브에서 손바닥을 거쳐 곧장 머릿속까지 전해지는 공 하나의 짜릿한 촉감에 만족할 때, 나의 시선은 허공에서 궤적을 그리는 야구공에 집중하는 것으로 또 충분하다.
아무래도 그는 다른 생각을 잊자고 나온 것 같다. 오늘은 공 하나만 신경 쓰자고 나온 사람 같다. 그가 한창 무급휴직의 터널을 지나는 사람이라 해도 좋고, 간신히 오늘만 살고 있는 프리랜서라고 해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 손에서 공 하나가 떠났다는 사실이다. 또 잠시 후 멀리서 돌아오는 공 하나가 있다는 사실이다. 한숨이나 푸념 대신 내보낸 그 공이 이제 내 손에 안착하기만을 기다린다. 이왕이면 짜릿하게 들어오기를 바라며, 조금 더 몸을 움직인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