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의 초반 의정 길이 참으로 험난하다. 정기국회 개원 이틀 만인 지난 3일 국민의힘(옛 미래통합당) 당직자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5일까지 ‘셧다운’됐다. 출입기자 확진자 발생으로 폐쇄됐던 국회가 지난달 30일 다시 문을 연 지 나흘 만에 또 문을 닫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이 때문에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와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등 여야 지도부가 자택 대기에 들어가기까지 했다. 정치권이라고 코로나19를 피해갈 수는 없으나 모처럼 국회가 기지개를 켜는 시점에 이런 악재가 겹쳤으니 달가울 리가 없다.
21대 국회는 출범 3개월이 되도록 제대로 굴러가지 못했다. 시작과 함께 줄곧 이어진 여야의 원 구성 협상 실랑이로 파행을 겪었다. 결국 야당 반발 속에 여당은 단독 원 구성을 강행했고 이후 거침없는 입법 독주로 정국은 더욱 얼어붙었다. 그렇게 시간을 허비한 여야는 정기국회 개원을 계기로 정상적인 관계를 찾아가는 형국이다. 비록 개원 초부터 코로나19라는 또 다른 복병을 만났지만, 어차피 당분간은 함께 할 수밖에 없으니 예방주사를 맞은 셈 치면 될 일이다. 중요한 건 힘겹게 제 궤도에 오른 21대 국회가 국민에게 어떤 새 모습을 보여줄까이다.
무엇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정기국회 개원과 맞물려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민주당은 이 대표 체제가 새롭게 출범했고, 김 비대위원장 취임 100일을 맞은 국민의힘도 당명을 바꾸는 등 당 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 대표와 김 위원장의 임기는 비슷하다. 이 대표는 대선 출마를 위해 내년 3월 물러날 전망이다. 김 위원장 또한 임기가 내년 4월 재보궐선거까지다. 둘 다 6~7개월가량 한시적 수장을 맡으며 당의 체질을 바꿔야 할 중책을 짊어진 것이다. 새로운 여야관계를 어떻게 정립해 나가느냐 하는 것도 이들에게 주어진 주요 책무다.
주어진 임기가 짧긴 해도 이들 각자는 남다른 출발선에 놓여 있다. 장기적으로는 내년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등 판이 커진 보궐선거를 성공적으로 치르는 게 가장 중요하다. 최근 엎치락뒤치락하는 당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건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두 대표의 향후 성과가 내년 재보선은 물론 대선의 판도까지 바꿀 수 있는 만큼 임기의 길고 짧음은 별 의미가 없다. 김 위원장이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백척간두에 선 심정’이라고 한 말은 이 대표에게도 다르지 않을 듯하다.
관건은 역시 두 당이 민심을 어떻게 얻어가느냐 하는 점이다. 역대 최악으로 평가받는 20대와 21대 국회 초반 보여준 여야의 끝간 데 없는 대립에 국민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다. 각각 제 갈 길만 가는 강경 대치에 정치는 실종됐으며, 여야 지지층을 가리지 않고 민심은 등을 돌렸다. 두 당 또한 이를 잘 알기에 뒤늦게나마 변화 의지를 보여 다행이긴 하다. 특히 이 대표와 국민의힘 지도부의 첫 공식 만남은 과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기대하게 했다. 이 대표는 “협의 과정에서 원칙은 지키지만 양보할 것은 양보하는 유연함을 보이겠다”고 했다. 김 위원장 또한 협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물론 첫 회동에서의 덕담 수준이고 또 한 번의 의례적 말 잔치로 끝날지도 모른다. 어쨌든 각자의 진정성은 머지않아 드러날 것이니 두고 볼 일이다.
이 대표와 김 위원장이 상대적으로 온건 성향인 만큼 과거보다는 나은 여야관계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현재로서는 그들이 협치에 어느 정도 진정성을 갖고 있으리라 믿는다. 다만, 그 진정성을 어떻게 실현시켜 나가느냐 하는 것은 별개의 사안이다. 둘 다 당내 지지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민주당 주류인 ‘친문’ 세력의 지지로 당의 수장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당 쇄신을 향한 그의 운신 폭을 제한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청와대 입김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겠느냐는 우려다. 김 위원장 역시 당의 구원투수일 뿐이다. 당장은 극우 세력과 선을 긋고 당의 색깔을 바꾸며 쇄신의 주역으로 부각되고 있지만, 여전히 당 안팎의 일부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따라서 이들에게 주어진 역할은 분명하다. 자신만의 확실한 색깔로 위기에 빠진 당을 탈바꿈시키는 일이다. 이 대표는 총리 시절 국회에서의 사이다 발언 등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당 지도력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자칫 ‘친문’ 세력의 지지에만 머문다면 당의 확장성은 물론 자신의 대권 가도에도 먹구름이 낀다. 김 위원장 또한 자신의 말처럼 지난 100일은 변화와 혁신에 시동을 건 것에 불과하다. 힘겹게 마련한 쇄신의 발판을 보다 구체화하는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두 수장에게 좌고우면할 시간은 없다. 반 년가량 뒤면 구체적 성적표가 나올 것이다. 짧지만 당의 미래가 걸린 중차대한 시기다.
논설실장 jj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