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반에 대한 편협한 집착과 잘못 전해진 곡명이 음악이 지닌 본래의 순진무구한 감성의 세계를 흩트려 놓는 일이 허다하다. 얼마전 클래식 음악하곤 거리가 좀 있는 어느 지인이 텔레비전 선전에 나오는 피아노곡인데 너무 좋았다고 무슨 곡인지 물었다. 필자가 알아보니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7번 중 3악장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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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뮌헨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베토벤 3번 교향곡 ‘에로이카’ 실황 앨범. |
그 지인은 이 피아노곡만 나오면 TV 선전이 생각날 것 아닌가 !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7번은 ‘Tempest’(폭풍)라는 부제가 붙은 곡이지만, 베토벤이 직접 곡명을 붙이진 않았다. 제자인 쉰들러가 이 곡을 이해하기 위해 베토벤에게 도움을 청하자 베토벤이 셰익스피어의 ‘Tempest’를 읽어보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 그래도 이 곡은 베토벤이 제목에 대한 암시라도 했지만, 얼마 전 이 칼럼에서 언급한 베토벤의 ‘월광’은 본래 작곡 의도와는 전혀 다른 넬시타프란 시인의 감성에 따라 부제가 붙여진 것이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도 그렇다. 이 제목으로 베토벤이 직접 붙인 것이 아니라, 이 곡이 마치 봄날같이 포근하고 희망과 행복에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한 출판인이 ‘봄’이라고 붙였다. 그 후 이 곡은 베토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스프링 소나타’로 알려지게 됐다.
이러한 예는 무수히 많다. 어떤 제목은 곡의 이미지와 어울리지만, 작곡가의 의도와 전혀 다른 엉뚱한 제목이 붙은 것도 있다. 한 예로 드보르작의 교향곡 8번에는 ‘영국’이라는 부제가 붙었는데, 이 곡은 보헤미아 정서가 가득 담겨 (아름다운 슬라브 무곡 같은) ‘체코’라고 해야 다분히 어울린다. 그러나 이 곡이 영국의 노벨로출판사에서 출판됐기에 ‘영국 교향곡’이란 부제가 붙게 됐다. 물론 곡명이 내용을 암시하는 것도 많다. 그러나 음악은 듣는 이의 감성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제목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명반도 마찬가지다. 음악을 좀 듣는다는 사람 중에는 “이 음반은 국내에서 좀처럼 구하기 어렵다” “희귀 음반이다” “누구의 연주가 명반 중 명반이다”는 식으로 명반 개념에 사로잡혀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과연 불후의 명반이 따로 있을까.
아무리 훌륭한 평론가나 음악 지식이 많은 분이 추천한, 이른바 명반도 듣는 사람의 감성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명반이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들어 좋으면 그것이 명연주고 명반이다. 무심코 흐르는 선율에서 지난날의 아름다웠던 추억에 젖어 들기도 하고, 영화 속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하고,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보기도 한다.
음악은 결코 이론이나 지식의 대상이 아니다. 자기 감성의 세계만큼 가슴에 와 닿기 때문이다. 오늘은 베토벤이 제목을 ‘보나파르트’(나폴레옹)라고 썼다가 지워버린 교향곡 3번 ‘에로이카’의 2악장에 심취해 볼까 한다. 세르지우 첼리비다케가 지휘하는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실황 음반으로….
필하모니 대표·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