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전국의 신문과 방송 노조 간부들이 미디어 관련 입법을 촉구하며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연좌농성을 벌인 적이 있다. 마침 추석을 보름쯤 앞둔 시점이었다. 의원회관 1층 로비에서는 각 의원실 앞으로 도착한 택배 분류작업이 한창이었다. 금빛 보자기로 감싼 선물 꾸러미들이 바닥이 안보일 정도로 깔려있었다. 한 신문사 노조 지부장이 중얼거렸다. “이렇게 표시나게 주고 받는 건 사실 아무 것도 아니죠. 눈에 안 보이는 게 진짜 문제지.”
4년 전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입법 때 식사, 선물, 경조사비의 상한액은 각각 3만, 5만, 10만 원이었다. 그런데 경조사비의 상한액수가 논란이 됐다. 사실 법은 ‘10만 원’이 아니라 ‘10만 원 이하’에 방점이 찍혀있었다. 그러나 이 법의 적용을 받는 공직자 공공기관인 공공유관단체인 언론인 등은 물론이고 법과 아무 상관없는 민간에도 결혼 축의금이나 상가 조의금의 표준이 10만 원으로 정해진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결국 시행 1년여만에 경조금 상한은 5만 원으로 낮아졌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 10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청탁금지법상 농축수산물과 그 가공품 선물 상한액을 20만 원으로 한시 상향해 적용하고 있다. 이 기간 중에는 한우 생선 과일 홍삼 젓갈 같은 품목은 좀 비싼 선물을 주고 받아도 처벌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농축수산물은 기존 ‘3·5·5’ 규정의 예외를 적용받아 원래도 상한액이 10만 원이었는데 이를 다시 배로 올렸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어려움에 직면한 관련 업계의 애로를 감안한 조치라는 게 권익위의 설명이다.
2000년대 초반 한때 ‘접대비 실명제’가 시행됐다. 기업의 접대비 지출이 건당 50만 원 이상일 경우 증빙서류 제출을 의무화한 것이다. 접대비 과다지출의 폐해를 막기 위해서였다. 연구결과 이 제도가 실제 기업 활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에 농축수산물 상한액을 높여달라는 요구는 업계와 관계부처에서 나왔다고 한다. 코로나 때문에 경영난을 겪는 분야가 특정 업계에 한정된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상한액 인상의 혜택이 영세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에게 돌아갈지도 의문이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가 아니라 재래시장에서 과일이나 한우를 구입해 선물로 보낼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선물을 받는 입장이라면 몰라도 선물을 줘야 하는 입장이라면 올 추석엔 고민이 커질 법하다. 말은 ‘20만 원 이하’라지만 실제는 ‘20만 원 짜리’로 들리기 때문이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