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흔히 항구도시이자 바다의 도시로 불린다. 지역의 대표 명소도 해운대와 이기대를 비롯해 바다를 접한 곳이 대다수다. 그런데 사실 부산은 산의 도시라는 이름이 더 걸맞다는 생각이 든다. 면적 769.82㎢에 달하는 부산의 16개 구군 어디서나 산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6개 구는 바다와 접하지 않았지만, 산은 부산의 모든 자치구에 있다. 해발 1000m를 넘는 높은 산이 있는 건 아니지만 800m를 넘는 금정산을 비롯해 백양산 장산 황령산 엄광산 달음산 등 숱한 산이 구석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 덕분에 부산 어느 지역에 살든지 큰 수고를 들이지 않더라도 가까운 산을 찾아 산행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산이 부산 최고봉 고당봉을 품은 금정산이다. 금정산은 해발고도가 높을뿐더러 빼어난 산세에 범어사를 비롯한 소중한 문화유산, 멋진 자연경관, 다양한 생물 종 등 명산의 조건을 두루 갖췄다. 게다가 금정구에서 동래구, 북구를 거쳐 경남 양산까지 아우르며 다양한 등산 코스를 품은 데다 주택가와 인접해 참으로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산이다.
금정산 자락 금정구에 살다 보니 수시로 이곳을 찾게 된다. 더운 여름날이면 비탈을 가로질러 난 숲길을 이어 걷고, 바람이 서늘하고 햇볕 좋은 가을날에는 주 능선으로 올라가 조망을 즐기기도 한다. 300만 인구가 사는 대도시에서 이런 산을 곁에 두고 산다는 건 이루 가치를 따지기 어려운 ‘특혜’와도 같다.
얼마 전에는 지인들과 금정산과 백양산의 둘레길을 이어 걸었다. 때로는 좁은 등산로를, 때로는 널찍한 임도를 걸으면서 시시때때로 변하는 경관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현재 금정산에는 지자체가 조성한 둘레길이 부산과 경남 양산에 걸쳐 있다. 통상 범어사를 기점으로 해 부산외국어대와 부산대, 금강공원, 만덕고개, 화명수목원, 부산인재개발원, 양산 임도를 거쳐 다시 범어사까지 한 바퀴를 걷는다. 이틀에 걸쳐 걸은 거리를 스마트폰 앱으로 재니 대략 50㎞ 안팎이다. 때로는 번잡한 사람 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주택가에 가깝게 내려가기도 하고 때로는 바람 소리와 새소리만 들릴 정도로 깊은 숲을 지나기도 한다.
백양산 둘레길도 금정산 둘레길 못지않게 도심을 가까이 둔, 쉽게 찾을 수 있는 길이다. 이 길 또한 대략 25㎞에 달하는 만만찮은 거리다. 금정산과 백양산 둘레길은 북구와 동래구의 경계가 되는 만덕고개에서 서로 연결된다. 북에서 남으로 거꾸로 길게 늘어진 8자 모양을 그린다. 금정구와 동래구, 부산진구 구간에서는 우거진 나무 사이로 때때로 부산 시가지가 시야를 가득 채우고 사상구와 북구를 지날 때는 낙동강의 흐름이 시선을 끈다. 미세먼지가 없이 맑은 날이면 을숙도와 낙동강 하구는 물론 멀리 거제도까지 시야에 담는다. 양산 구간은 접근성은 떨어지지만 그만큼 울창한 숲을 지나는 재미가 남다르다.
이 두 둘레길을 이어 걸으면 무려 75㎞에 달하는 장거리 트레킹 코스가 된다. 따로 정확하게 재 봐야겠지만 이 정도면 서울과 경기도에 걸쳐 만들어진 북한산 둘레길 71.8㎞를 넘어서는 거리다. 수려한 북한산 자락 낮은 곳을 수평으로 연결한 이 길은 한 해 1000만 명이 찾아 북한산의 명성을 더욱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부산 금정산~백양산 둘레길을 걸어 보니 접근성을 따지나 도심과 산, 바다, 들판을 두루 바라보는 경관을 따지나 북한산 둘레길보다는 몇 수 위일 듯하다.
또 서울과 경기도 산악인들은 ‘불수도북’이라 해서 서울 북쪽을 병풍처럼 둘러싼 불암산과 수락산, 도봉산, 북한산의 45㎞에 이르는 종주 주 능선을 자랑한다. 부산도 이에 뒤지지 않는, 아니 이보다 한 단계 높은 급수의 낙동정맥이 백양산과 금정산 주 능선을 거쳐 흐른다. 거리도 ‘불수도북’ 종주 길에 못지않다. 코로나19 때문에 야외활동조차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산악인이나 등산 동호인들도 멀리 다른 지역의 산이나 트레킹 코스를 찾는 게 눈치 보이는 일이 돼버렸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렇게 아쉬워할 일도 아니다. 달랑 물 한 병, 김밥 한 줄 들고 교통카드만 챙기면 찾을 수 있는 명산, 명 트레킹 코스가 우리 가까이에 있다. 이토록 좋은 걸 곁에 두고 멀리 다른 동네 산을 그리워할 일은 아니다.
산악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