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와 올해 두 차례에 걸쳐 주거 빈곤 아동 가정을 취재했다. 두 번을 합쳐 14가구를 방문했고,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 과정에서 새롭고도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아동 주거빈곤 문제 해결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적’이 생각보다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더라는 것이다.
그중 하나는 ‘라떼는’이다. “아이들이 주거 빈곤에 내몰려서 살고 있으니 대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에 “옛날에는 다 저런 집에서 살았다. 나도 ‘푸세식’ 화장실 썼다”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다. 물론 나 역시 초등학교 입학 전 ‘푸세식’ 화장실 가기 싫다고 울어서 엄마 손 잡고 갔던 기억이 남아있으니 “나 때는 다 그랬어”라는 말이 틀리진 않을 것이다. 문제는 지금은 2020년이라는 데 있다. 지금이 전쟁의 상흔을 딛고 일어나 잘살아 보자던 개발도상국 시절은 아니지 않은가. 그때는 ‘단칸방에 푸세식 화장실’이 표준이었을지 모르지만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선, 33평 아파트 한 채에 10억은 우습게 된 2020년에 저런 집은 기가 막히는 일이다.
또 하나는 “부모가 있는데 우리가 왜?”라는 반응이다. 보호자가 있는데 왜 그 아이들을 도와주어야 하느냐는 논리다. 우리가 흔히 도와주어야 하는 아이들이라고 생각하는 ‘소년소녀가장’은 요즘 찾아보기 어렵다. 혼자가 되면 위탁가정에 맡겨지거나 시설에서 보호하기 때문이다. 부모와, 혹은 조부모와 함께 살지만 헤어나올 수 없는 빈곤의 늪에 빠진 아이는 생각보다 많다. 아이 둘이서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 화재가 난 ‘라면 형제’ 사건만 보더라도 그렇다. 어디 그 가정에 엄마가 없었던가. 보호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있더라도 제 역할을 못 할 때 민간의 지원과 국가 복지가 필요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른도 빈곤하면 힘들기는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태어나보니 그냥 가난했다. 빈곤가정 사례를 보면 어릴 때부터 시작된 가난의 사슬을 끊지 못해 평생을 그냥저냥 버티며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사회적 비용을 생각해서라도 어릴 때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도와주는 게 효율적이지 않을까. 다행스럽게도 첫 기사가 나간 후 반응은 나쁘지 않다. 관련 공공기관에서 현황 파악에 나섰고, 일부 민간단체가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보인 것이다. 이번 기사가 주거빈곤 아동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사회1부 하송이 차장 songya@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