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추석 연휴가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올 초 코로나19가 발생했을 때만 해도 지금까지 맹위를 떨치리라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그라질듯 하다 재유행하기를 몇 차례, 이제 누구도 코로나19의 조기 종식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는다. 그 기세는 급기야 명절까지 삼켜 ‘언택트 추석’이란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풍속도마저 낳았다. 대다수가 그렇게 추석 같지 않은 추석을 보냈다 해도 명절 ‘밥상머리 대화’가 없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니지만, 올 추석 연휴 또한 ‘밥상머리 대화’의 주제는 풍부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최대의 명절조차 무력화시켜버린 코로나19는 피해갈 수 없는 일이었다. 방역과 경제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간 시간을 되새기며 하루빨리 이 전대미문의 사태에서 벗어나길 기원했을 터이다. 그리고 좋든 싫든, 추석 직전 정국을 강타한 메가톤급 이슈가 밥상머리에 오르지 않을 수 없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관련 의혹과 충격적인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살 사건이 그것이다. 특히 이 두 사안은 폭발력이 큰 만큼 정치권은 연휴 전부터 민심을 잡기 위한 선전전에 총력을 펼쳤다.
그런데 올해는 예기치 않은 변수(?)가 생겼다. 가수 나훈아가 이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인 것이다. 지난달 30일 KBS에서 방영된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공연 후폭풍이다. 이 공연은 나훈아가 코로나19로 오랜 기간 지친 국민을 위로하기 위해 마련한 추석 이벤트였다. 오랜만에 무대에 올라 부른 노래는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지만, 기실 더 화제에 오른 건 그가 공연 중 언급한 몇 가지 발언이었다. “살아오는 동안에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들이 생길 수 없다”는 등의 발언이다. 여기서 위정자는 정치를 하는 사람(爲政者)이 아니라, 거짓 정치를 하는 사람(僞政者)을 칭한 것으로 해석된다.
과연 그의 위력은 컸다. 그게 나훈아의 힘 때문인지, 우리가 처한 살벌한 정국 때문인지는 모를 일이다. 특급 스타의 무대라고는 해도 평상시 같으면 흘려 들을 수 있는 말들이었지만, 사태는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특히 일부 야당과 보수 인사들은 그의 발언에 큰 정치적 의미를 부여했다. 그가 언급한 ‘위정자’(僞政者)가 문재인 대통령을 의미하며 현 정부를 에둘러 비판했다는 것이다. 청와대와 여당은 당연히 이런 평가에 발끈했다. 나훈아의 말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고, 감사의 말을 ‘정치’가 아닌 ‘정쟁’의 도구로 전락시키지 말라며 과대해석을 경계했다.
정치권의 반응 만큼이나 여론도 엇갈렸다. 나훈아의 본심이 뭐든, 그다지 예상 못한 부분도 아니다. 하지만 뒷맛은 씁쓸하다. 톱 가수의 공연 중 몇 마디 발언에 나라가 들썩이는 게 결코 정상적일 수는 없는 까닭이다. 한 야당 국회의원은 “올 추석은 가히 나훈아 추석”이라고 했다. 그의 말이 나훈아 공연 자체에 대한 평가이면 좋겠지만, 꼭 그런 것 같지만은 않다. ‘권력자는 주인인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게 이번 공연의 키워드’라는 이어지는 말에서 현 정부 비판과 연계하려는 뉘앙스가 느껴져서다. 그렇다고 여기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여권의 모양새도 썩 보기 좋은 것은 아니다. “나훈아의 발언에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들이 고개를 쳐들고 이런 말 저런 말로 마치 남 얘기 하는 걸 보니 아직도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라는 한 여당 의원의 발언 또한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듯해서다.
때아닌 나훈아 후폭풍으로 추석 연휴가 시끄러웠지만 이 또한 지나갈 터이다. 하지만 굳이 나훈아가 아니더라도 명절 때면 이어지는 정치권의 아전인수식 민심 타령이 과연 우리 사회에 얼마나 득이 됐는지는 되짚어 볼 일이다. 아니, 오히려 득보다는 독이 되지 않았을까. 지난해 추석 때만 해도 정국의 블랙홀이 된 조국 사태를 두고 정치권은 제각각의 민심만 대변했다. 오죽했으면 ‘조국’이란 단어 자체가 추석 밥상머리에 올려서는 안 될 금기어 1위로 꼽혔을까. 불행하게도 1년이 지난 지금, 그 주제만 추미애와 공무원 피살 사건, 나훈아 발언으로 바뀌었을 뿐 진영 갈등은 더욱 심해졌다. 그러고도 각각 자신들이 본 게 명절 민심이라고 강변한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을 수도 있다’고 했다. 정치인이 민심의 무서움을 일깨우려 자주 인용하는 문구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진짜 민심을 외면하고 심지어 왜곡하기까지 한다. 이번 추석 나훈아라는 국보급 브랜드의 공연을 해석하는 방식도 어김없었다. 그의 이번 공연 키워드는 ‘대한민국 어게인’이었다. 자신의 말 몇 마디에 또 나라가 쪼개지는 걸 그가 원한 것은 아닐 터이다. 우리 국민의 위기 극복 DNA를 다시금 일깨운 거면 족하지 무슨 사족이 더 필요하나.
논설실장 jj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