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구조의 위기가 심각하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이 이 문제를 잘 알지 못하거나 위기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안타깝게도 인구 구조의 위기는 주어진 현실이고 닥쳐올 미래의 조건이다. 이를 상수(常數)로 놓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주제의 발표나 강연을 요청받으면 마치 전쟁에 임하는 장수의 심정으로 비장하게 나서곤 한다.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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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서상균 |
1970년 출생아는 100만 명이었다. 그런데 2019년 출생아는 30만3000 명이고, 합계출산율은 0.92였다. 인구수가 유지되려면 합계출산율 2.1이라야 한다. 수명 증가와 생산성 향상 등을 고려할 때, 인구가 완만하게 감소하는 것은 경제사회적으로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합계출산율 1.7을 ‘저출생 기준선’으로 삼는데, 이 선 아래로 떨어지면 국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하거나 때론 비상한 조치를 취한다.
나는 대중강연에서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OECD 저출생 기준선인 1.7 아래로 떨어진 때는 언제였을까요?”라고 묻곤 한다. 정답을 말하는 수강자는 흔치 않다. 대충 찍어보라고 요청하면, 많은 경우 20년쯤 됐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틀렸다. 1985년 합계출산율이 1.66으로 이미 1.7 이하였다. 1990년 합계출산율은 1.57이었고, 2000년엔 1.48에 그쳤다. 그리고 2002년에는 OECD ‘초저출생 기준선’인 1.3 아래로 떨어졌고, 이후 지금까지 18년 동안 초저출생이 지속됐다. 올해는 합계출산율 0.9마저 무너질 것으로 예측된다.
저출생은 고령화의 다른 얼굴이다.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중이 2000년(7.3%) 7%를 넘어 고령화사회에 진입했다. 2025년이면 20.3%로 초고령사회에 들어선다.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2017년, 노인인구 비중 14.2%)를 거쳐 초고령사회에 도달하는 데 단지 25년이 걸린다. 프랑스는 154년, 미국 94년, 독일 77년, 가장 빨랐다는 일본도 36년 걸렸다. 세계신기록이다. 이런 초고속 고령화는 세계 최저 합계출산율에 주로 기인한다.
1985년 이후 지난 35년 동안 계속된 저출생과 초저출생 때문에 생산연령인구(15~64세)는 급속히 줄어든다. 향후 10년만 보더라도 해마다 평균 34만 명씩 감소한다. 이에 따라 경제성장률은 하락하고 정부의 조세수입은 줄어들 전망이다. 그런데 노년부양인구비(생산연령인구 100명이 부양해야 할 65세 이상 노인인구의 백분율)는 2019년 20%에서 2030년 38.2%로 10년 만에 거의 2배로 늘어난다. 장차 복지 수요는 폭증하고, 복지 재원의 제약은 갈수록 심해진다. 경제·복지 체제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는다는 뜻이다.
나는 정치의 본질적 목적은 국민의 행복 증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지속가능한 복지국가라야 한다.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성의 위기에 처한다면, 비록 복지국가의 제도적 틀을 어느 정도 갖췄다고 해도 국민이 행복할 순 없기 때문이다. 국가의 재정 능력이 한계에 직면해 경제·복지 체제가 더는 작동하기 어려워지면, 장차 양극화와 불평등 구조 속에서 경제사회적 약자들부터 먼저 고통과 불행을 감내하는 거대한 야만의 시대가 열릴 개연성이 커진다. 그러므로 경제·복지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일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돼야 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려는 ‘정치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인구구조 위기와 경제·복지의 지속가능성과 관련해 그동안 우리나라 정치가 보여준 모습은 무기력과 무능력 그 자체였다. 한마디로 ‘정치 실패’다. 실제로 1985년부터 이미 합계출산율이 1.7 이하였음에도 1990년대 중반까지 ‘출산 억제 정책’을 폈고, 2000년대 들어 인구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했음에도 타성에 젖어 안일한 처방만 남발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정치는 경제·복지 체제의 패러다임 전환적 혁신에 이르지 못했다. 정치가 본질적 목적을 망각하고 제 역할을 못 하는 상황은 지금도 여전하다. 경제·복지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고 있음에도 혁신적 해법을 내놓기는커녕 의미 없는 정쟁으로 국민의 관심과 시선을 분산시키고 금쪽같은 시간을 낭비한다. 경제·복지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려는 정치사회적 공론화조차 시도하지 않는다.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저출생·고령화라는 인구구조 위기는 주어진 상수이므로 이를 새로운 표준으로 삼아 지속가능성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먼저 출산율을 높이려는 총체적 노력이 요구된다. 생산연령인구 급감에 대처하려면 여성과 청년의 경제활동 참여를 확대하고, 노동생산성을 높이려는 혁신에 나서야 한다. 또 4차 산업혁명시대 디지털 경제의 생산성을 높이고, 초고령사회의 지속가능한 경제·복지 체제를 제도적으로 확립해야 한다.
그래서 2033년까지 60세 정년제를 ‘65세 고용보장제’로 바꿔야 한다. 노인연령도 그때까지 단계적 상향 조정을 완료해야 한다. 노후를 위한 사적 준비를 지원하고 공적 소득보장(국민연금과 기초연금)도 강화해야 한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확충하고 의료전달체계 패러다임을 ‘병원입원 의료’에서 ‘지역사회 의료’로 전환해 보건의료의 질과 재정적 지속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또 보건·의료·돌봄·복지·주거 등이 지역사회에서 통합적으로 제공되는 커뮤니티 케어(지역사회 통합 돌봄 체계)를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
입원·입소 중심 체계에서 벗어나 지역사회가 자생력을 가진 경제·복지의 유기적 공간으로 다시 살아나는 역동적·포용적 복지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성·현장성에 바탕을 둔 지방자치단체의 경제·복지 역할을 크게 강화해야 하며, 이럴 때라야 마침내 우리나라는 인구구조 위기 속에서도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게 된다.
나는 정치의 역할이 중요함을 다시 한번 절박하게 강조하고 싶다. 이 모든 일이 정치를 통해서라야 제대로 공론화·제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제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