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은 먹고살 수 없게 되면 먹고살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땅으로 이동하는 법이다. 이는 동서고금을 통해 변하지 않는 현상이다. 이런 종류의 민족이동을 고대에는 이민족의 침입이라고 불렀고, 현대에는 난민 발생이라고 한다.”
어찌 보면 난민 발생은 생존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다. 먹고살 만한 게 많은 데로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 사람이 모이면 살아남기 위해 또 피 터지게 싸워야 한다. 여기에도 수요와 공급의 원칙이 적용된다. 원인이 있어 결과가 생긴다. 세상은 그러면서 발전한다. 역사가 된다. 하지만 마침 그 시절 산 이가 겪는 고통은 역사 속에 묻힌다. 개인 입장에서는 그냥 불행이다. 평범한 이는 편하게 사는 게 제일 아닌가.
난민의 사전적인 의미는 생활이 곤궁한 국민이나 전쟁 천재지변으로 곤궁에 빠진 이재민을 말한다. 최근에는 주로 인종적, 사상적, 정치적 원인과 관련된 이유로 집단적으로 망명하는 자를 일컫는다.
요즘 전세난을 겪는 이를 난민이라고 한다. 이는 사전적인 의미에서 보면 좀 과한 표현이다. 물론 난민에 비유할 만큼 어려움을 겪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이 역시 수요와 공급의 측면에서 보면 본능적인 현상이다. 돈의 속성에 한 치도 어긋남이 없다. 최근 현상이 희한한 점은 부총리나 하는 이까지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이다. 생활이 곤궁하지 않을 터인데.
먹고살 게 많은 곳에 사람이 모이면, 집은 희소가치로 가격이 높아진다. 전세가든, 매매가든. 여기까지는 당연한 현상이다. 그런데 많이 가진 이도 전세난을 겪는다니, 좀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 아닌가. 이전 같으면 전세금을 더 주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인데. 이는 분명 제도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현실과 유리된 제도가 어떤 우스운 상황을 초래하는지를 보여준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전세 난민이 될 처지란 뉴스를 접하면서 든 생각이다. 그는 임대인으로서, 임차인으로서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고 한다. 제도를 바꾼 이가 그 미흡함에 피해를 보게 된 것이다.
지난 7월 말 국회에서 통과된 주택임대차보호법의 후폭풍은 거세다. 전국의 전세 매물이 실종됐다고 한다. 정부는 곧 보완 대책을 내놓는다고 한다. 그때 부작용이 해결될 수도 있다. 그 사이에, 잘못된 정책에 고통받은 이는 그냥 재수가 없었다고 웃어넘겨야 하는 걸까. 개인 삶이 실험 대상은 아니지 않는가. 정책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 일은 사람이 한다.
정순백 논설위원 sbj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