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연구하다 보면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는 순간을 자주 경험한다. 생명 현상의 기본 단위인 세포를 보더라도, 에너지를 만들어 생명을 유지하는 ‘미토콘드리아’라는 기관은 세포의 죽음(apoptosis)을 관장하는 핵심 기관이기도 하다. 생명을 다해 힘없이 떨어지는 낙엽을 만드는 일도 사실은 새로운 생명을 위한 나무의 노동과 수고의 과정이다. 심리적인 거리낌과는 별개로, 과학에서의 죽음은 잠깐 머물렀던 생명이라는 아주 부자연스러운 상태에서 자연스러운 상태로 회귀하는 과정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죽음만큼 만인에게 평등한 것이 또 있을까. 누구나 죽고, 언제든지 죽을 수 있고, 어디서든지 죽을 수 있으며, 죽음의 방식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측면에서 죽음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그러나 당장 임종을 눈앞에 둔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사람은 죽음을 피부로 느끼지도, 생각하지도 않는다. 현대인들의 삶에 대한 애절함과는 달리, 죽음에 대한 무감각함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첫째, 죽음을 배울 기회가 줄어들었다. 과거엔 가족에 둘러싸여 집에서 임종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아이들도 죽음의 순간과 장례 절차를 관찰하고 참관할 수 있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죽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고, 임종자에 대한 마음가짐과 태도를 배울 수 있었다. 또 이것이 곧 죽음의 현장에서 배우는 ‘죽음 준비’ 교육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병원 임종이 일반적이다. 죽음에 대해 알 기회가 줄었으니 당연한 귀결인지 모른다.

둘째, 과학의 발달로 죽음을 선택하고 연장할 수 있게 되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의학적으로 나누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죽음의 기준이 호흡과 심장의 정지에서 뇌사로 바뀌었지만, 인간의 삶을 어디까지로 보아야 하는지는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죽음을 피하고자 수많은 연구를 하고 치료법을 개발한다. 때로는 명줄을 붙잡는 조치를 하기도 하고, 미래 치료제를 기다리고자 사람을 냉동하자는 말도 나온다. 냉동 인간을 통한 생명 연장과 같이 주어진 과학기술의 토대가 바뀌었을 때, 우리가 지금은 진리로 받아들이고 있는 개념도 변할 수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우리가 가진 윤리적 명제들에 대해 매우 복잡하고 철학적 질문을 던질 것이다.

끝으로, 죽음이 대량화되고 값싸게 취급되는 행태의 문제다. 언론 매체가 발달해 비행기 추락사고, 세월호 참사와 같은 엄청난 죽음과 엽기적이고 반인륜적인 사건을 생생하게 접하게 되었다. 워낙 큰 사건들을 지켜보다 보니 차츰 그 충격에서 무뎌진다. 고령화 사회의 도래를 심각한 위기로 묘사하는 풍토도 한몫 한다. 평균수명이 길어져 노인이 많아지자 사후 그들이 차지할 땅에 대한 경제적 합리성이 따져지고, 국토도 비좁은데 매장을 고집하는 것은 이기적 발상이 되었다. 이제 죽음은 그것을 금기로 여기던 정신마저 사라졌고, 주검은 위생적으로 다루어야 할 무생물이 되었다. 죽음은 누구나 해체하고 분석하여 자기 뜻대로 개념화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이런 풍토 속에 우린 점점 죽음에 대해 무뎌지고 있다.

죽음이란 말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재수 없고 불길한 것으로 생각하니, 자고로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면 머릿속을 생명으로만 가득 채워야 마땅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굳이 눈총까지 받으며 죽음을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죽음에 관한 생각은 삶의 소중함을 알게 하고 주변을 돌아보는 품격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된다.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하고자 한다면 삶도 그러한 모습으로 살아야 하기에 당연히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과 성찰은 별반 다르지 않아야 한다. 평화로운 죽음은 평화로운 삶에서 시작된다.

삶은 유한하므로 특별하다. 동시에 특별하므로 소중하다. 이 간단한 사실을 받아들이면, 우리는 지금 살아있는 것만으로 열심히 그리고 아름답게 살 이유가 되지 않을까. 죽음이 아름다운 삶의 연장 선상에 있으며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죽음의 질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존엄한 죽음은 삶에 대한 진지함이 주는 선물’임을 알게 될 것이다.

부산대 생명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