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자와 단속 공무원간의 유착은 기자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사안이다. 불법 유흥업소나 오락실 단속 과정에서 업주가 뇌물을 준 경찰이나 공무원의 명단을 적은 장부라도 발견되면 지역사회는 한동안 시끄럽다. 일선 경찰기자 시절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사건 자체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게 있다. 당시 부산경찰 수뇌부의 말이다. “업자 입장에서 정말 자기와 긴밀하게 얽힌 인물이면 훗날을 대비해 증거를 남기겠나. 진짜는 장부에 없다.”
기결수든 미결수든 교도소나 구치소 담장 밖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편지다. 언론사나 취재기자 앞으로 이런 편지가 가끔 온다. 주로 억울함을 호소하고 때로는 비위나 인권유린을 고발한다. 근거가 없어 폐기되기 일쑤지만 실제 보도로 이어지는 일이 없진 않다. 한명숙 뇌물 공여자였던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의 옥중 비망록과 편지가 얼마전 한 매체를 통해 공개됐다.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다는 증언은 위증이었다’는 내용이다. 인터넷 여론조작 사건의 김동원 씨(일명 드루킹) 옥중 편지가 보도된 적도 있다. 김경수 경남지사가 댓글 조작 시연을 지켜봤다는 것이다. 여권은 한 전 대표 발언은 신빙성을 인정하면서 드루킹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폄하했다.
가입자 수천명에게 1조6000억 원대의 피해를 입힌 라임펀드 사태에서 옥중 서신이 또 등장했다. 주범격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주인공이다. 김 전 회장은 검찰에 향응을 제공하고 야당 정치인을 동원해 은행권 로비를 벌였으며 이런 사실을 실토했으나 검찰이 수사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편지를 언론사에 보냈다. 앞선 재판에서는 여권 핵심인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5000만 원을 줬다고 폭로했던 그다. 이 말이 사실이면 검찰 정치권 금융권 등 수사 범위는 전방위로 확산될 수밖에 없다. 추미애 장관과 윤석열 총장, 여당과 야당의 공방이 시작됐다.
5년 전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수사를 받다 목숨을 끊으면서 자신이 정치자금을 준 유력 정치인 8명의 실명과 뇌물 액수가 적힌 메모를 남겼다. 리스트 정치인 중 유죄를 받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죽는 사람이 거짓말 했겠느냐는 인식은 세간에 여전하다. 범죄자 혹은 범죄 혐의자라고 진실을 말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최소한 정상배(政商輩)에게 휘둘리는 사회를 건전하다고는 못할 것이다. 자기편에 유리한 말만 들으려는 정치인들이 이런 사회를 만들고 있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