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박상현의 끼니] 꿀꿀이죽과 돼지국밥

  • 박상현 맛 칼럼니스트
  •  |   입력 : 2020-10-21 19:25:45
  •  |   본지 21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어렸을 때 리어카에 드럼통을 싣고 음식점과 가정집을 돌며 잔반을 모아 가는 이들이 있었다. 그렇게 모은 잔반으로 돼지를 키운다는 사실을 알고는 한동안 돼지고기를 멀리했다.

잔반으로 키우던 재래종 돼지.
농경사회에서 소는 핵심적인 농기구였다. 넓은 면적을 농사짓는 데 소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다. 평생 일만 하던 소는 죽어서는 고기와 가죽을 남겼다. 그럼에도 소는 인간이 먹는 것을 탐하지 않았다. 평생 풀과 여물만 먹었다.

돼지는 땅을 갈지도 수레를 끌지도 않았다. 오로지 먹기만 했다. 잡식성인 돼지는 풀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인간의 식성을 빼닮았다. 하는 수 없이 인간의 음식을 나눠 먹이며 키웠다. 그게 잔반이다. 그나마도 사정이 괜찮을 때 일이다. 한국전쟁 직후 인간이 먹을 음식조차 부족했다. 굶기를 밥 먹듯 하던 시절, 유일하게 음식이 남아도는 곳이 있었다. 미군부대였다. 미군부대 잔반은 돼지에게로 안 가고, 인간이 먹었다. 돼지를 키우던 잔반이 인간의 생명줄이 됐다. 그래서 ‘꿀꿀이죽 ’명칭은 처절하고 비극적이다. 꿀꿀이죽은 이것저것 마구 섞인 죽이 아니라 돼지가 먹던 죽이란 의미다.

굳이 이렇게까지 돼지를 키웠던 건 죽어서 존재감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신에게 올리는 제사는 인간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민원을 접수하는 행위다. 부탁하는데, 맨입으로 할 수는 없는 노릇. 제물이 필요했다. 생명 있는 것을 바칠수록 절실한 의지가 전달된다고 믿었다. 그렇다고 살아서 역할이 분명한 가축을 바칠 순 없었다. 제물로서 돼지만큼 적합한 동물도 없었다.

제사가 끝나면 축제가 시작됐다. 돼지가 제물로 바쳐지는 날은 곧 인간이 고기를 먹는 날이다. 그런데 한반도 재래종 돼지는 치명적 단점이 있었다. 먹을 것을 나누며 애써 키워봐야 60㎏이 안 넘었다. 여기서 얻는 고기는 겨우 30kg 남짓. 축제를 즐기고 경조사를 치르기에는 충분치 않았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분배의 정의를 실현할 방법이 필요했다. 머리·뼈·내장 등을 모두 넣어 끓여서 국물을 얻고, 밥이나 면을 말고, 고기 몇 점을 올렸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축제다운, 잔치다운 분위기가 연출됐다. 돼지국밥의 탄생이다.

공동체 중심 농경사회에선 이 정도로 충분했다. 산업화가 되고 인구가 급증하자 공리주의만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대량 사육의 핵심은 속도·효율성. 요크셔, 랜드레이스, 듀록이라는 외래 품종을 섞어 ‘YLD’라는 삼원교잡종을 만들었다. 이 새로운 품종은 혁명적이었다. 태어날 때 1.5㎏이었는데 6개월 만에 110~120kg까지 성장했다. 지방도 적어 훨씬 많은 고기를 얻을 수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축제나 경조사가 아니라도 고기를 맛볼 수 있게 됐고, 거리마다 삼겹살집이 넘치고,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돼지고기 굽는 연기를 피울 수 있다.

더는 잔반으로 돼지를 안 키운다. 옥수수와 대두박에 비타민, 미네랄 등 각종 기능성 성분을 섞은 배합사료를 먹고 자란다. 인간에게도 돼지에게도 꿀꿀이죽은 추억이 되었다.

맛 칼럼니스트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문 前 대통령 거제 생가 복원키로
  2. 2신세계, 센텀 롯데百 인수…쇼핑·문화·관광 복합타운 만든다(종합)
  3. 3신세계 야외주차장도 복합개발 속도…센텀 유통지형 요동
  4. 4팔만대장경 다시 판각…해인사 50년 대장정
  5. 5“영도 절영초 통폐합 추진 중단하라”
  6. 6고리원전에 가짜 베어링 납품 업체들, 1년째 수사 표류
  7. 7행사 한창인데 벡스코 정전…전력관리체계 도마(종합)
  8. 8부산시, 쿠팡 등 3곳 1630억 투자 유치
  9. 9“국제신문 살리는 게 지역 민주주의 지키는 일”
  10. 10김해 시내버스 개편…장유 등 23대 증차
  1. 1“영도 절영초 통폐합 추진 중단하라”
  2. 2“능인, 경영능력에 의문” 부산국힘 내주 지원안 머리 맞댄다
  3. 3국힘 부정선거론 다시 띄우기…민주 “선동에 열중” 비난
  4. 4李 비판 유시민에 김민석 “대응 불필요”
  5. 5송파 247만 장 검증, 신분확인·촬영요구로 시작부터 차질(종합)
  6. 6대한항공 말흐리기…실체없는 통합LCC 부산 허브
  7. 7국민의힘 곽규택 의원 등 동구 주요 당직자, 북항 돔구장 정부 공모 참여 환영
  8. 8[뉴스 분석] 종교인·언론사주가 국회 권위 훼손…도덕성 논란까지
  9. 9李 대통령 지지율 2%p 오른 46%…조희대 탄핵 반대 45%
  10. 10부울경 광역의회 협력강화 선언 “미래산업 함께 육성”
  1. 1신세계, 센텀 롯데百 인수…쇼핑·문화·관광 복합타운 만든다(종합)
  2. 2신세계 야외주차장도 복합개발 속도…센텀 유통지형 요동
  3. 3행사 한창인데 벡스코 정전…전력관리체계 도마(종합)
  4. 4부산시, 쿠팡 등 3곳 1630억 투자 유치
  5. 5삼성전자 분기 영업익 107조 역대 최대…반도체로만 106조(종합)
  6. 6미분양·빈집 누적…부산 안서도 주택 위기 제각각
  7. 7롯데, 영도대교 복원 인연 축제로 잇는다
  8. 8AI드론으로 참치 찾는 선박 부산 출항
  9. 9가계대출 금리 5% 턱밑…고정형 주담대 사상 첫 5% 뚫어
  10. 10‘덕후 천국’ 부산에 떴다…롯데百 전국 첫 IP 전문관
  1. 1문 前 대통령 거제 생가 복원키로
  2. 2팔만대장경 다시 판각…해인사 50년 대장정
  3. 3고리원전에 가짜 베어링 납품 업체들, 1년째 수사 표류
  4. 4“국제신문 살리는 게 지역 민주주의 지키는 일”
  5. 5김해 시내버스 개편…장유 등 23대 증차
  6. 6본사 비대위·퇴직자, 지광 고소…실질경영자에 ‘체불 책임’ 추궁
  7. 7기말고사에 EBS 유사 문항, 처음 아니었다
  8. 8“대화 거부한 건 대주주…당당하면 왜 국회서 소명 안 했나”
  9. 9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30일
  10. 10검증 체계 없는 유가보조금…줄줄 샌다
  1. 1괜찮을까…모레노호, ‘96라인’·손흥민 모두 품었다
  2. 2마침내…밀워키, 월드시리즈 첫 우승(종합)
  3. 3“AG 환희 잊고…리그 첫 경기부터 승수쌓기 총력”
  4. 4여자프로농구 절반이 女감독
  5. 5롯데 수석코치 허문회, 2군 감독 박승민
  6. 6모레노, 은퇴소동 ‘96라인’ 달랜다…대표팀 내홍 풀까
  7. 7부산시대 2년차 읏맨 “홈팬 응원에 성적으로 보답”
  8. 8밀워키, 창단 58년 만에 WS 우승…5차전서 4-1로 탬파베이 제압
  9. 9경남 생활체육 대축전 30일 개막…3일간 31개 종목 열전
  10. 10롯데, 공격서 수비로 중심 이동…주전 새판짜기 예고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지역이 기획, 국가가 지원하는 R&D 시대 열자
진짜 질문의 시작
국제칼럼 [전체보기]
부캉이에게 부끄러운 북항 재개발 민낯
부산 관광, 마냥 좋기만 할까
기고 [전체보기]
‘성범죄 취업제한’의 사각지대
‘2028 세계디자인수도 부산’의 과제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탈서울’ 안 된다던 원안위, 세종행에 왜 침묵하나
AX·반도체 전시회 5개 동시에 열렸는데…
도청도설 [전체보기]
클릭으로 여는 독도
지긋지긋한 론스타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개정 응급의료법이 ‘미수용 방지법’?
25년을 간직한 리플렛 세 장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국회 출석 거부하며 장외 사실호도 일삼는 지광
AI 해킹 범죄 고도화…수사 공백 해소 시급하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반복된 일상에서 마음의 여유를 찾는 법
한국 경제 떠받치는 중장년, 이제 다시 봐야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기다림에도 비용이 든다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대규모 대미 투자, 기회인가 위협인가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은 어떻게 마음에 남는가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시민 주거안정에서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청년 떠나는 지방, 수도권 인구 분산해야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