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사람은 생전에 훌륭한 일을 하여 후세에 빛나는 이름을 남겨야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남겨야 한다’엔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이름값을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인간의 의지가 담겼다. 호랑이가 가죽을 남기려고 살지는 않을 터이니 하는 말이다.
그 이름이 상징하는 바는 참으로 넓고 깊다. 선한 이름을 본받으려 하고, 악한 이름을 반면교사로 삼으려는 이유다. 판소리 흥보가 첫머리에 ‘공자님 당년에도 도척이 있었으니…’ 하는 대목이 있다. 공자는 우리가 다 아는 성인이요, 도척은 부하 9000명을 거느리고 온갖 나쁜 짓만 골라서 저질렀다는 악인의 대명사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고인 이름을 부르며 그 무게를 제대로 느끼는 건 산 사람 몫이다.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추모하는 분위기 속에 해프닝이 있었다. ‘이건희 회장님의 편지’라는 글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퍼지자 삼성 측이 “가짜”라고 일축했다. “3000원짜리 옷 가치는 영수증이 증명해주고, 3000만 원짜리 자가용은 수표가 증명해주고, 5억 원짜리 집은 집문서가 증명해주는데 사람의 가치는 무엇이 증명해주는지 알고 있느냐”며 돈이 최고라는 세태를 꼬집는 듯하다. 대한민국 1위 주식 부자였던 고인에게 ‘부자로 살아보니 어떻습니까’, ‘돈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하고 묻고 싶은 장삼이사의 마음이 가짜 편지의 전말이지 싶다.
인터넷에서 이 글을 검색하면서 고인의 선친인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떠올랐다. 깔끔한 서체가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병철 회장은 1987년 타계하기 직전 자신의 속마음을 담은 24개 질문을 천주교 신부에게 보냈다.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성경에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을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했는데, 부자는 악인이란 말인가?” 등 당초 40여 개에서 24개로 정리된 질문을 필경사가 알뜰하게 정리했다고 한다. 신과 인간, 종교와 과학을 아우르는 이 진짜 질문의 내용과 해답은 차동엽 신부가 2012년 ‘잊혀진 질문’이란 책으로 소상하게 공개했다.
한국 경제계의 두 거목을 한꺼번에 호명했다. 이병철 회장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삼성의 기틀을 만들었다면, 이건희 회장은 혁신과 도전으로 초일류 삼성을 일궜다. 그게 빛이라면 그림자도 엄연하다. 어느 쪽에 무게 중심을 줄지 선택은 각자가 할 일이다.
정상도 수석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