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를 처음 접한 건 대학 때 수업시간 과제 때문이었다. 과목 이름이 기억이 안날 정도로 꽤 오래 전 일이지만 당시 봤던 영화는 이란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였다. 리포트를 써야 했으므로 영화를 보는 내내 인상 깊은 장면을 메모하느라 정작 분위기를 제대로 즐길 수 없었지만 한 번도 접하지 못한 이란의 영화라는 점과 주인공 이름인 ‘네마자데’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지난 2002년 제7회 부산국제영화제 땐 초청팀의 단기 스태프로 일했던 적이 있다. 지금이나 그때나 영화제 자원봉사자나 스태프로 일하는 건 누구나 바라는 일이었다. 영화제 분위기를 실컷 만끽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 맡은 업무가 축제 기간동안 김포공항에 가 있는 거였다. 영화제 초청 게스트가 김포에서 비행기를 타면 부산에 연락해 적절한 의전을 제공해야 했기 때문이다.
일주일 남짓 한 기간동안 여러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큰 사고는 두 가지였다. 당시 초청받았던 칸 영화제 티에리 프리모 집행위원장이 가방을 도난당한 사건이었다. 초청팀 부스에 와서 이야기를 하는 중에 누군가 와서 그의 여행가방을 끌고 가버린 것. 크게 화를 내던 티에리 프리모 집행위원장 앞에서 죄송하다는 말은 소용이 없었고 눈물로 사죄할 수 밖에. 초청팀에서 단기 스태프를 뽑는 면접 때 ‘무슨 일이 생겨도 울지 말고 침착하게 대처하라’는 말을 왜 했는지 깨닫게 되는 사건이었다. 게다가 당시 개막작인 해안선의 배우들이 하마터면 개막식에 제대로 참석하지 못할 뻔도 했다. 워낙 바쁜 스타들이니 비행기 탑승 시간을 여러 번 바꾸고 같이 가야 하는 스태프도 많아 비행기 좌석 확보가 쉽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비행기 시간을 확정하면서 사고가 난 것. 좌석은 모자라고 꼭 타야 하는 사람은 넘치니 항공사에 손이 발이 되다시피 빌어서 감독과 배우 일부만 탑승하고 몇 명은 개막 시간에 맞춘 그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 대역죄인이 된 심정으로 배우와 매니저 앞에서 사과했다. 당사자는 얼마나 화가 나고 황당했을지 지금 생각해도 죄송하다.
쓰고 보니 영화제에 도움이 아니라 짐만 됐던 건 아닌가 싶어 민망하다. 정작 입사 이후론 바쁘다는 핑계로 영화제를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다. 추억 속 기억으로 남았던 영화제를 영화 담당으로 취재하게 되면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문화부 차장 jador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