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018년 9월 평양 정상회담에서 올림픽을 공동으로 개최하는 것에 합의했다. 같은 해 12월 남북체육분과회의는 올림픽 공동개최 희망서신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전달하기로 했다. 지난해 1월 대한체육회는 공동 개최지로 서울을 지정했고, 지난 1월 2032년 하계올림픽 서울·평양 공동개최 및 추진계획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2021년 IOC가 개최지를 선정할 텐데 아직 많은 사람이 2032년 서울 평양 공동올림픽 유치에 대해 모른다. 물론 지금도 많은 사람이 홍보를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최근 민주평화통일위원회는 각 지역에서 공동올림픽 추진을 위한 작은 포럼을 잇달아 개최했다. 나는 서울 송파구와 성동구, 부산에서 1991년 당시 남북단일팀의 실제 스토리를 생동감 있게 전하고 그때 느꼈던 솔직한 감정에 관해 얘기했다. 많은 사람이 2032년 서울 평양 공동 올림픽개최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했음을 느끼는 좋은 시간이었다. 1991년 당시 세계선수권대회 두 달을 앞둔 시점에서 남북체육회담을 통해 급하게 단일팀이 구성됐다. 그 시절 나는 정부와 체육회로부터 단일팀 구성을 통보받고 마음은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고, 대회 한 달을 앞두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시작할 때만 해도 ‘보여주기식’ 역할이니 소기의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목표는 ‘결승만 진출하면 된다’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북한선수들과의 훈련과 같이 지내는 시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따뜻한 마음과 정을 가진 한민족이라는 생각이 점점 들기 시작했다. 이분희 선수가 간염으로 피로감을 빨리 드러내며 훈련에 참석을 못 했을 때 내 마음도 같이 아팠다. 내게 더 큰 무게감이 느껴질수록 더 책임감을 갖고 최선을 다해 훈련에 임했다. 한 달은 짧았지만 마음을 맞추기에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세계대회는 시작됐고, 우리는 예선을 통과하며 본선에 진출했다.
이때부터는 토너먼트로 경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더 긴장됐다. 그런데 이분희 선수의 컨디션이 난조를 보였다. 이분희와 내가 단식을 두 번씩 뛰고 세 번째 복식을 해야 하는 단체전에서 이분희 선수가 패배해 나를 더 압박했지만 정신적으로 더 나를 강하게 만들었고, 결승전까지 내게 주어진 세 경기를 모두 이기게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 이분희 선수는 컨디션 난조로 준결승부터 유순복 선수로 교체됐고, 또다시 나는 세 경기를 이기며 결승에 진출했다.
중국과의 결승전에서는 내가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덩야핑 선수와의 대결이 불가피했고, 이분희 대신 유순복 선수로 대체돼 더 어려운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바체육관을 가득 메운 민단과 조총련의 합동응원으로 마치 홈그라운드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의 힘을 받으며 경기가 시작됐다.
이때부터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1번으로 나간 유순복 선수가 세계 1위 덩야핑을 이겨버린 것이다. 나 또한 2번에서 가오준 선수를 이기며 2 대 0이 됐다. 복식만 이기면 우승의 상황, 첫 게임마저 우리가 이기며 우승이 거의 눈앞에 와 있었다. 그러나 중국은 저력을 발휘하며 복식을 뒤집어서 승리했고 주전인 나마저 덩야핑 선수에게 져서 2 대 2가 됐다. 그러나 마지막 유순복 선수의 파이팅은 대단했다. 그로 인해 우승을 결정짓는 순간 우리는 모두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 순간 나는 이것이 작은 통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슴 저 밑바닥부터 묵직한 그무엇인가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 우리는 정말 하나가 됐고, 일본에서 남북이 하나가 돼 중국을 이기는 역사를 쓸 수 있었다. 남북이 하나가 되면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필자는 2032년 서울·평양 공동올림픽 개최를 위해 국민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치만 한다면 우리는 또 하나의 신화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은 하나가 될 것이고, 성공적으로 대회를 치르기 위해 서로 노력하리라 생각된다. 벌써 가슴이 설렌다.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통일도 이제는 머지않은 느낌이다.
마사회 탁구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