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영웅이 명멸한 세계 골프계에서 ‘왕(The King)이라 불리운 사나이’가 있었다. 아놀드 파머(1929~2016). PGA투어 62승, 메이저 7승에 빛나는 불세출의 골퍼다. 대단하긴 하지만 메이저 18승의 잭 니클로스나 9승의 벤 호건에 비해 특별히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그에게만 ‘왕’의 칭호가 붙은 이유는 뭘까? ‘닥치고 공격’ 스타일에 매료된 충성도 높은 팬클럽 ‘아니의 군대(Arnie’s Army)’가 있었기 때문이다. 군대에겐 충성을 바칠 대상, 즉 왕이 필요했다.
이후 왕을 뛰어 넘어 ‘황제라 불리운 사나이’가 탄생했다. 타이거 우즈(45). 아마추어였던 미래의 황제를 프로의 세계로 이끈 이가 바로 ‘왕’이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1996년 여름 아놀드 파머는 우연히 스탠퍼드대학 근처에 갔다가 2학년생 우즈를 식사에 초대했다. 그런데 다음 날 신문에 우즈가 60달러짜리 식사를 제공받은 것은 미국대학체육협회(NCAA) 규정 위반일 가능성이 높다는 기사가 났다. 파문은 커졌고, 우즈는 결국 프로행을 선언했다. 당시 우즈의 프로행 첫 인삿말 “반갑다 세상아!(Hello World!)”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의 나이 21살 때였다.
우즈는 프로 첫 해 신인왕에 오르며 ‘아놀드 파머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흑인 최초로 신인상을 거머쥔 우즈는 ‘숲속의 호랑이(The Tiger in Woods)’처럼 질주하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1997년 4월, 꿈의 메이저대회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당시로선 대회 최저타인 18언더파를 기록하며 ‘황제의 시대’를 만천하에 공표했다. 22살의 대관식이었다.
그 이듬해인 1998년 미래의 ‘골프 천재’가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다. 임성재(22). 세 살 때 제주도로 이주한 그는 사업가 아버지를 따라 골프와 만났다. 아들의 천재성을 알아본 아버지는 일곱 살 때 레슨프로를 붙였다. 제주도에서 강한 바람과 함께 골프 근육을 키운 임성재는 지난해 ‘아놀드 파머 트로피’를 받으며 골프사를 새로 썼다. 흑인 최초의 신인왕이 된 우즈와 같은 나이인 21살에 아시아인 최초 신인왕이 된 것이다. 그랬던 그가 어제 끝난 ‘마스터스’에서 그의 우상 우즈가 지켜보는 가운데 당당히 2위에 올랐다. 비록 우승은 놓쳤지만, 마스터스 대회 사상 아시아인 최고 성적이다. 일찍이 PGA투어를 놀라게 했던 ‘탱크’ 최경주(50·완도), ‘우즈 킬러’ 양용은(48·제주도)에 이은 또 한 명의 ‘섬소년’이 펼칠 활약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기분이 상쾌해진다.
이승렬 논설위원 bungs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