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한다. 이는 매순간순간 다음 경기상황이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는 스포츠의 묘한 매력 때문일 것이다.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들 행위 하나하나에 의해, 그리고 이를 지배하는 그 멘탈(Mental)에 의해 경기의 향방을 좀체 가늠할 수 없기에 사람들은 이에 환호하고 열광한다. 비록 전문가들에 의해 경기의 흐름이 정확히 읽히고 그 결과가 예측되기도 하지만, 수시로 새로운 반전을 도모하는 스포츠의 생리 때문인지 관중들은 끝까지 손에 땀을 쥐고 이를 지켜보곤 한다.
불확실성은 늘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는 전제일 수 있다. 이는 동일한 일상을 반복하며, 자신의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회·경제적 위치가 변할 것 같지 않은 오늘의 현대인들에게 어쩌면 스포츠는 현실에서 충족하지 못하는 그 대리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지 않은가 한다. 그래서인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나 선수들을 아바타로 설정하고 이를 끊임없이 자신과 동질화시키며 생의 의미를 찾으려는 그런 사람들의 속성을, 나는 1982년부터 절실히 경험하였다.
당시 6개 팀으로 지역을 분할하여 출범한 한국프로야구, 비록 정치적으로 불순한 의도가 개입되었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됐지만 그때 중학생이었던 나는 말 그대로 흥분 그 자체였다. 지역을 대표하는 고교야구팀을 열렬히 응원하고 있었기에 이를 연고로 하는 프로팀인 롯데자이언츠를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고, 경기가 있는 날이면 으레 선수들의 모든 정보를 스캔하며 TV 앞을 점령하곤 하였다.
하지만 응원을 하는 만큼 반비례하는 롯데의 성적을 지켜보며 괜히 초라해지는 나 자신에 화가 나, OB팬이었던 남동생과 실랑이를 벌이다 종종 싸우기도 했다. 충분히 경기에서 이길 수 있는 결정적 장면에서 번번이 수비실책과 삼진을 당하는 선수들 모습에 왜 그걸 제대로 하지 못하나 하는 아쉬움과 혹시나 하는 일말의 희망이 동시에 교차했다. 이런 상황들이 일상에 투사되면서 고입 연합고사를 앞둔 나에겐 큰 아킬레스건으로 다가오기도 했었다.
1984년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대입을 위한 보충수업과 늦은 야간자습에 지쳐갈 무렵, 나를 구원한 아바타는 바로 최동원 선수였다. 그의 역동적인 투구 하나하나에 힘입어 롯데는 새롭게 부활했고, 그에 힘입어 나의 청소년기는 사춘기를 모르고 지나갈 정도였다. 마운드에 우뚝 선 금테 안경의 지칠 줄 모르는 야구에 대한 투혼은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그해 가을야구에 최고의 기쁨을 우리에게 선물했다.
하지만 그를 롯데에서 볼 수 없게 된, 그리고 시작된 대학생활로 인해 한동안 관중으로서의 프로야구는 기억 저 편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성인이 되고나서 학창시절의 야구 유전자가 다시 꿈틀거린 탓에 결국 사회인야구에 입문하게 되었다. 이후 달라진 건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닌, 직접 몸으로 읽어내는 야구를 하게 된 것이었다. 늘 봐왔던 눈높이와 달리 이에 조금도 미치지 못하는 나의 플레이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심한 좌절감과 함께 오기를 발동시켰다.
결국 무더운 한여름, 부산에서 처음 문을 연 야구아카데미 연습장에서 실력을 땀으로 교환하였고 손바닥에 잡힌 물집과 굳은살은 야구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를 불러일으킨 이유가 돼주었다. 그리고 몸은 참으로 정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예전 그렇게 애가 닳았던 수비와 타석에 섰던 롯데 선수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지금도 여전히 주말마다 뛰는 사회인야구 경기가 그날 어떻게 펼쳐질지, 그리고 나의 플레이가 어떻게 시합에 영향을 미칠지 늘 마음 설렌다. 공 하나에 경기의 승패가 갈릴 수 있는 접전에서 이를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관전을 하든 혹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그라운드에 서든 야구는 나의 생에 큰 무늬를 남겼다. 그리고 야구와 우리의 삶이 지극히 닮은꼴이 많다는 것을 나의 눈과 몸은 기억하고 있다. “시인이 시 쓰기를 그만두면 무엇이 될까? 스포츠맨이 되리라”라는 알베르 카뮈의 말이 문득 생각나는 가을이다.
시인·부산 경원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