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한사전에서 ‘mask’를 찾으면 명사로 ‘가면, 탈’이라고 나온다. ‘가면’이라면 아무래도 이탈리아 베네치아가 떠오른다. 베네치아 사육제때 펼쳐지는 가면무도회가 유명하다. 베네치아 가면의 유래는 13세기 초 십자군전쟁기 포로로 잡혀온 무슬림 여인들의 부르카에서 찾는다. 하층민들이 가면 복장을 갖추고 신분을 숨긴 채 귀족 흉내를 내던 가면놀이가 발전해 지역 축제의 핵심 이벤트가 됐다. 1월 말~2월 초 열흘간의 축제에 시민과 300만 명의 관광객들이 어우러져 가면축제를 벌이는 장면은 장관이다.
베네치아의 장인들이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예술품 수준의 가면을 만들었다.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것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전세계인에게 마스크가 일상의 필수품이 되면서 상황이 변했다. 세계적인 패션 명품 브랜드 및 글로벌 업체들이 사회적 기부 차원에서 마스크를 제작해 지역사회와 나눴다. 프랑스의 루이비통 구찌 디올 생로랑 샤넬, 이탈리아의 프라다 람보르기니, 독일의 BMW 폭스바겐, 미국의 GM 포드 나이키 뉴발란스 등 수없이 많다. 마스크 귀퉁이에 작게나마 기업 로고를 붙인 곳도 있었는데, 흔치않은 ‘레어템’이라며 사용하지 않고 보관만 하는 사례도 있었다. 또 영국 브랜드 버버리는 8월부터 90파운드(한화 14만 원)짜리 면 마스크를 발매하고, 수익금을 코로나19 펀드에 기부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기업 로고를 새긴 마스크를 직원들이 나눠 쓰고 지인들에게도 나눠주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직원간 소속감을 높이고 홍보 효과도 노린다는 것. 스포츠계도 예외는 아니다. 대구시를 연고지로 둔 프로야구 삼성라이온즈와 프로축구 대구FC가 파랑색 천에 팀 로고를 그린 마스크를 제작해 팬들과 나눴다. 이달 중순 일본에서 얼굴 알리기가 힘든 영업맨들에게 ‘마스크 명함’이 인기라는 소식도 전해졌다. 소속 회사 직함, 이름 등을 새겨 효과를 거둔다는 얘기인데 국내 도입도 시간문제라는 전망이다.
이른바 기업 또는 개인의 브랜드를 마스크로 활용하는 시대다. 베네치아의 마스크가 신분을 가려 억눌린 자아를 해방시킨 ‘가림의 도구’였다면 지금의 마스크는 정체성을 표출하는 ‘알림의 도구’로 진화한 셈이다. 단어 mask의 동사적 의미인 ‘(감정 냄새 사실 등을) 가리다’라는 부분도 수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와중에도 마스크 명함이 유행하면 일자리를 찾지 못했거나 밀려난 사람들은 어떤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할지 난감할 것 같다는 염려는 지울 수 없다. 자괴감이 들지 않을까? 지나친 기우인가?
이승렬 논설위원 bungs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