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권 관문공항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일부 언론은 6월 지방선거 이후 가덕도 신공항 건설이 이슈가 된 것은 전적으로 여권의 정치적 셈법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사회·문화의 영역 모두를 아우르는 총체적 이슈였다. 최종적으로 어떤 결정이 나지 않는 한 계속될 논쟁거리다. 문명적 이슈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자그마치 2년 반 전에 내가 국제신문 바로 이 지면에 기고한 칼럼의 일부이다. 과거의 창고에 있어야 할 글이 마치 최신 이슈를 다루는 듯한 ‘신선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흘러간 시간이 아까워 우울하기까지 하다. 당시 제7회 전국지방선거 이후 부울경 단체장들이 머리를 맞대고 동남권공항 문제를 논의할 때도 정치적 꿍꿍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선거를 앞두고 있던 때가 아니라 선거 직후였음에도 그랬다. 사정이 이러하니 내년 4월 보궐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이를 정치적 이슈로 몰고 가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 되었다.
정치적 셈법만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의 비판 내지 비난은 언제나 집요한 터라, 당시 나는 이 문제에 간접화법으로 좀 부드럽게 접근하고자 했다. ‘그러지 마시라’는 바람이었다. 그래서 꿈 이야기를 했다. ‘한여름의 몽상’이란 엉뚱한 칼럼 제목을 내세우면서까지 신공항 문제가 ‘문명적 이슈’임을 설득해보고자 했다. 글이 신통치 못했음은 자인하지만, 공항 건설의 문제를 정치적 셈법만으로는 볼 수 없으며 다양한 문명적 차원에서 볼 때 유의미할 수 있다는 입장은 지금도 견지하고 있다.
잘 알고 있듯이 신공항에 관한 논의는 2003년 1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이 부산 상공인들과의 간담회에서 피력한 의견을 기점으로 시작되었다. 선거를 위해서가 아니라 선거 직후에 논의 되었던 것이다. 신공항 건설은 여러 관점에서 그 타당성이 인정되었는데, 무엇보다도 국토균형발전의 차원에서 중요하고도 시급한 과제로 제시되었다. 곧 정치적 고려가 아니라 ‘정책적 고려’였던 것이다. 이 정책적 제안이 지난 십 수 년 동안 각 정치권의 정략에 휘둘려 지금까지 오게 된 것임을 부인하기 힘들다. 아직까지도 신공항 문제를 정치적이고 정략적인 관점에서 논하는 것은 비생산적이다. 반복적이고 따라서 지루하며 재미없고 의미 없는 일이다.
문명적 관점에서 이야기한다면 그 반대일 것이다. 한 나라의 정책 가운데서 공공건설은 곧 문명적인 것이다. 이는 고대 문명에서부터 우리가 확인해오던 것이며 역사적 교훈으로 배워온 것이다. 로마는 드넓은 영토를 정복함으로써 못된 짓을 많이 한 제국이었다. 그럼에도 로마인들의 행적이 조금이나마 용서되고 지속적인 성찰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그들이 가는 곳마다 역사에 남을 공공건설을 했기 때문이다. 라틴어로 도시(civitas)와 시민(civis)의 의미를 담고 있는 문명(civilization)이란 말에 충실하게 그들은 시민의 삶을 위해 도시를 건설하고 이를 연결하는 수많은 길을 닦았다. 길이야말로 문명화의 핵심 매체였던 것이다.
이천 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오늘날에는 하늘길이 전 세계의 도시들을 연결한다. 지난 한 세기 동안 그렇게 해왔다. 사람들이 흔히 지나치는 것이지만 하늘길을 연결하는 거점인 공항은 하나의 도시이다. 도시에 공항이 들어서는 것이 아니라, 공항이 생김으로써 특별한 도시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별난 도시 주위에 있는 기존 도시들도 또 다른 생명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20세기 말부터 분명해졌다.
21세기 초에 작가 알랭 드 보통은 런던 히드로 공항으로부터 일주일 동안 그곳의 ‘상주 작가’로 초청되었다. 그가 공항에 머물며 그려낸 것은 다름 아닌 도시의 이야기였다. 다양한 인종과 계층의 여행자들과 공항을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공항의 삶을 이룬다. 그곳엔 차가운 첨단 기술 제품의 활용이 일상화한 속에서도 인간적 일상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 문명의 모든 순간들을 포착할 수 있는 도시와 같은 장소, 그것이 드 보통이 그린 공항이었다.
그는 곧 하늘로 올라갈 비행기의 출발 시간을 알리는 대형 스크린처럼 공항의 매력이 집중된 곳은 없다고 했다. 그 스크린은 이 세상 어디로든 ‘떠나는 일’이 얼마나 쉬운 지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드 보통은 스크린의 반만 보았다. 공항의 스크린은 무사히 ‘돌아오는 일’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지 또한 보여주기 때문이다. 인간은 ‘귀환의 정서’를 가진 동물이다. 돌아오기 위해 어디론가 떠나는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영화 ‘터미널’에서 공항은 ‘기다리는’ 장소임을 잔잔히 보여준다. 여인이 묻는다. “당신은 뭔가 기다린다고 했나요?” 감성의 연줄을 느낀 남자가 답한다. “맞아요, 우리 모두는 기다리고 있어요.” 공항에선 누구든 무사히 떠날 비행기와 무사히 만날 사람을 기다린다. 아니 무사함 그 자체를 기다린다.
공항이 일반 도시와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면, 떠나고 돌아오고 기다리는 일이 삶의 전면에 촉각처럼 드러나 있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이 특별한 도시에선 안전이 명시적이고도 최우선인 과제이기 때문이다.
안전의 과제는 우리를 공항 입지 선정의 구체적 문제로 다시 돌아가게 한다. 개인적으로도 김해공항을 수백 회 이용하면서 지형과 안개로 비행기 이착륙 때 불안했던 경험이 적지 않았다. 김해공항 확장안이야말로 전적으로 정치적 셈법에 의한 것이 아니었던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지난번 칼럼에서 의사결정 속도의 문제도 거론했다. 여기서 속도란 ‘빨리빨리’가 아니라 ‘잃어버린 시간’을 회복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제프 베조스의 말을 인용하며, 완벽한 결정은 없으므로 오히려 늦는 것이 큰 대가를 치를 수 있다고도 했다. 곧 ‘불확실성의 만성화’가 가져올 피해를 지적했다.
여당은 신공항 이슈가 선거용이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에 최종 결정해서 실행에 옮기지 못하면, 문제는 더욱 커진다. 매번 기회가 있으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할 것이고 매번 결정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철학자·문화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