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평생 과거에 합격했을 때와 귀양살이에서 풀려났을 때가 큰 기쁨이었는데, 처음으로 우두를 실시했을 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리나라에 우두법(牛痘法·우두에 의한 천연두 예방법)을 도입한 지석영(1855~1935)은 1879년 첫 우두 접종 당시의 심정을 이같이 전했다. 일본이 세운 부산 제생의원에서 우두법을 배운 그는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처가가 있는 충주에 들러 40여 명에게 우두를 놓아주었다.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 천연두라며, 왕족을 일컫는 ‘마마’라는 극존칭까지 붙였던 시절이었으니 그 심정을 짐작할 만하다.
“귀하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심각한 질병을 퇴치했습니다. 후손들은 천연두라는 끔찍한 질병이 존재한 바 있으며, 귀하가 그것을 박멸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인 토마스 제퍼슨은 1806년 우두법을 창안한 영국인 의사 에드워드 제너(1749~1823)에게 감사 편지를 보냈다. 치사율이 30%에 달하는 인류 최악의 전염병을 물리쳤으니 당연한 사의 표시라 하겠다.
전염병 예방에 사용하는 항원(抗原)을 뜻하는 ‘백신(vaccine)’이란 용어는 제너가 만들었다. 우두를 의미하는 라틴어 ‘바리올라에 바키나에(variolae vaccinae)’가 어원이다. 백신은 항생제, 정수 기술과 함께 인류의 수명을 늘린 3대 요인으로 꼽힌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80% 이상의 영·유아가 백신을 접종받는데, 그로 인해 목숨을 구하는 아이가 연간 3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데도 백신 접종을 기피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여론조사업체 퓨리서치센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성인 남녀의 51%만이 코로나19 백신이 나오면 맞을 의사가 있다고 응답했다. 이 때문에 내달 11일께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할 예정인 미 정부가 골치를 앓고 있다. 설문조사 결과처럼 인구의 절반이 백신 접종을 기피할 경우, 미 정부가 소망하는 ‘백신에 의한 집단면역’은 이루기 어렵다.
미국은 현재 코로나19 확진자가 일주일에 100만 명가량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있다. 이런데도 백신 접종 기피자가 많은 건 정부의 잘못이 크다. 재집권욕에 치우쳐 방역을 소홀히 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실정이 백신 접종 불신을 키웠다는 얘기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20년 집권” 운운하며 정권 안보를 민생에 앞세운다면, 트럼프의 낭패는 불가피하다. 추미애 법무장관의 무리수 등 작금의 국정 혼란이 이를 예고한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