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음식이 가져야 할 두 가지 조건은 첫째 지역에서 나는 식재료를 사용하고 둘째 다른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음식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두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추면 더할 나위 없지만 둘 중 한 가지 조건만 갖춰도 향토음식으로 인정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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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역설치 |
예를 들어 다슬기는 하천을 끼고 사는 모든 동네에서 잡힌다. 너무 익숙한 식재료라 지역마다 고유한 이름을 갖고 있다. 경남에서는 민물고동, 경북에서는 고디, 전라도에서는 대사리, 충청도에서는 올갱이, 강원도에서는 꼴팽이라 불린다. 이처럼 다른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음식이지만 지역에서 나는 식재료를 활용했기 때문에 다슬기국은 향토음식으로 분류된다. 대전의 두부두루치기는 그와는 반대의 경우다. 주재료인 두부를 비롯해 부재료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대전에서 나는 식재료라 부를만한 것이 없다. 하지만 대전식 두부두루치기는 오로지 대전에서만 만날 수 있다. 따라서 이 또한 향토음식으로 분류된다.
그럼 만약에 두 가지 조건, 즉 지역에서 나는 식재료를 활용해 오로지 그 지역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음식이라면? 요즘 말로 향토음식 중에서도 ‘찐’이다. 부산 기장군에 이런 향토음식이 하나 있다. 이름조차 낯선 ‘설치’다. 설치는 기장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일상적으로 먹어온 음식이다. 콩나물을 삶은 물에 된장, 국간장, 마늘, 다진 파, 참기름으로 간을 한 다음 미역을 곁들이면 ‘미역설치’가 되고 모자반을 곁들이면 ‘모자반설치’가 된다. 설치는 특히 기장 지역의 경조사에 빠지지 않았던 음식이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의 경조사는 해당 집안이 주체가 되고 마을 공동체가 함께 참여하는 마을행사였다. 하지만 외식산업의 확장은 이 전통을 공동체 밖으로 가져갔다. 결혼식이 제일 먼저 벗어난 반면, 장례식은 그나마 최근까지 전통을 유지했다. 그래서 기장 토박이들 사이에서 설치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는 경우가 마을 주민의 장례식이다. 장례식의 단골 음식이 된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조리법이 간단하니 많은 양을 만들기도 쉬웠다. 모자반과 미역이야 계절에 따라 기장 앞바다에 지천으로 널렸으니 비용도 저렴하다.
지금부터가 결정적이다. 국은 끓여 놓으면 식기 때문에 계속 끓이며 온도를 맞춰야 했다. 손이 모자라는 판에 그럴 경황이 없었다. 설치는 어차피 식은 상태로 먹는 음식이니 갓 만들었을 때나 먹을 때 온도가 같다. 손님 치르기에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설치를 담을 때 국물을 넉넉하게 잡으면 냉국이 되고 자박자박하게 담으면 나물이 된다. 많은 조문객을 치르기에 이보다 맞는 음식이 없었다.
올해 기장미역을 수확하기 시작한지 보름 남짓 지났다. 일주일 정도 더 기다리면 ‘쫄쫄이미역’이라 부르는 북방계 미역이 본격적으로 수확된다. 미역설치는 쫄쫄이미역의 식감과 맛을 느끼기에 가장 적합한 조리법이다. 올 겨울엔 대변항에서 생미역을 구입해 미역설치에 한번 도전해 보시는 건 어떨까? 밥반찬, 술안주로 두루 어울리는 음식이며, 무엇보다 차가운 겨울바다의 청량함을 느끼기에 이만한 음식이 없다.
맛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