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히 혼란스런 미국 대선이 민주당 바이든 후보의 승리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탈도 많고 말도 많았던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을 떠나게 되었다. 우리가 트럼프 대통령의 철수와 미국에서의 정권교체를 무작정 환호할 수만은 없고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렇다.
| |  |
| 그림=서상균 기자 |
무엇보다도 트럼프행정부가 북한과의 적극적인 개입정책을 펼쳤던 데다가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 위원장과 두 차례의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포함해 모두 세 차례 직접 만나 한반도 비핵화를 이루고 북미관계를 새롭게 하겠다는 합의를 끌어냈다는 점이다. 아무리 트럼프 대통령의 진정성이 항상 의문시되었다 하더라도 북미정상회담이 일어나고 정상간 적대관계 종식과 비핵화 합의를 이룬 사실은 결코 사소하게 평가할 수 없겠다. ‘톱다운’ 어프로치라는 게 단순히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고 치부해버리기에는 그것을 실현하기가 현실적으로 너무나 어려웠고 장래에도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북한이 ‘톱다운’ 접근을 구사할 수 있었던 데에는 문재인대통령과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정책이 있었다. 2018년에 놀라운 성과를 거둔 남북미 3자프로세스는 문재인정부의 ‘중재자’ 역할로 인해 가동되었다는 사실은 당시 백악관의 안보보좌관을 지낸 존 볼튼이 그의 회고록에서 밝힌 바 있다.
남북미 3자프로세스는 두 번의 북미정상회담을 만들어냈다. 기적같은 일이었다. 그 중간에, 혹은 앞뒤로 남북정상회담이 세 차례 열렸고, 남북미 세 정상이 판문점에서 회동하는 일도 일어났다. 정상회담의 매력은 그 효율성에 있다. ‘톱다운’ 어프로치의 반대가 ‘보텀업’ 어프로치일텐데, 후자는 공동의 목표가 있고 동기가 생겼다 하더라도 디테일과 시간이 발목을 잡기 일쑤다.
2018년의 남북미 3자프로세스가 정상회담을 하고 합의문만 남발하는 데 그쳤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2017년 한반도 정세는 북한의 핵도발과 미사일 도발로 점철되어 종잡을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문재인정부의 대북정책은 아직 개시되지도 않았고, 미국에서는 북한 공격이라는 시나리오가 매우 심각하게 검토되었다. 전쟁일보직전이었던 것이다. 이런 험악한 정세를 일거에 대화와 평화의 정세로 바꾼 것이 문재인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였다.
흔히 그래서 달라진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 실질적으로도 북한은 이후 아직까지 핵도발이 없었다. 2018년 5월에는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했다. 북핵 프로그램의 근거인 영변 핵시설의 영구 폐기도 약속되었다. 실질적인 비핵화에 있어 초보적인 발걸음을 뗀 것이다.
그러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비핵화는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의 ‘노딜’로 인해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돌이켜보면,
1990년대초 탈냉전이 북한을 배제시킨 가운데 진행되어온 지난 30여 년 동안 북핵프로그램은 끊임없이 진전되었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1993년에 제1차 북핵위기가 발발하자 미국은 양자협상에 나선 나머지 이듬해 ‘제네바 합의틀’을 만들어냈다. 북한이 핵프로그램을 동결하는 대신 미국이 보상을 해주는 내용을 담았다. 이 합의틀의 이행이 가다서다를 반복하다가 붕괴되어버렸다.
2002년 10월 우라늄농축프로그램 가동 의혹에 따른 제2차 북핵위기가 발발했다. 이번에는 미국과 북한의 양자 협상이 아니라 중국이 역할을 하는 6자 회담틀이 만들어졌다. 2005년 9월에 ‘9.19공동성명’이 채택되었는데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등 포괄적인 합의를 담았다. 이 합의도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나머지 북한은 2006년에 첫 핵실험을 해버렸고, 6자 회담도 결국 막을 내렸다.
이렇듯 북한의 도발, 협상, 합의, 합의 붕괴, 재도발이라는 긴 시간을 거치면서 이후 북한은 수차례 고도의 핵실험을 감행했고 이제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되었다. 2018년 남북미 3자프로세스도 중대한 기로에 놓여있다.
이제 약 한달 반 뒤면 조 바이든 당선자가 대통령으로 취임을 하게 되고 워싱턴에 새로운 행정부가 출범한다. 바이든 당선자는 이미 차기 행정부의 외교안보팀을 꾸리고 공식 발표도 했다. 새 팀의 면면이나 과거 언행으로 미루어 북핵정책을 내다볼 수 있게 되었다.
일단 바이든행정부는 ‘핵무기없는 한반도’를 목표로 삼을 것이다. 이는 남북간에 이미 밝힌 ‘핵없는 한반도’ 목표와 다르지 않아 근본적 불일치는 없을 것이다. 방법론은 어떨까. 지속적인 외교를 통해 단계적인 비핵화를 방법론으로 삼을 것도 어렵지 않게 내다볼 수 있다. 다만 ‘톱다운’ 어프로치는 폐기될 것이고 다시 ‘보텀업’ 어프로치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다시 원점에서 출발해야 할 것인지, 트럼프 대통령이 합의한 ‘싱가포르선언’을 이어받을 지는 불분명하다.
오바마 대통령 시기 바이든 당선인이 부통령이던 2015년에 이란 핵딜이 있었다. 차기 국무장관으로 내정된 토니 블링컨 당시 국무부장관은 실무책임을 맡아 이란 핵딜을 성공으로 이끈 경험이 있다. 이란 핵딜의 요체는 동결인데, 1994년 제네바합의틀의 재판이라 할 수 있다. 동결(freeze)이 화두가 될 개연성이 높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에 바이든 당선인을 위시하여 그의 외교안보팀과 한반도 비핵화 과제를 다루어나가야 할 형편이다. 누가 정권을 잡느냐와 무관하게 북핵문제는 한반도의 미래 운명에 닿아 있기 때문에 임기를 염두에 두지 말고 임할 책무가 있다. 바이든 당선인은 동맹을 중시할 것이라고 기회 있을 때마다 말했다. 굳건한 한미동맹을 기초로 남북미 3자가 공동의 목표로 삼고 있는 “핵없는 한반도”를 향해 끝까지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난관을 넘어 작은 성취(스몰 딜)라도 이루기 위해서.
경남대 석좌교수·전 주일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