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들, 힘들었지? 그동안 수고 많았다. 열심히 달려온 후라 조금 쉬어도 좋으련만, 또다시 논술을 준비하는 바쁜 모습에 아빠는 마음이 무겁구나. 모자라는 잠과 싸우며, 오르지 않는 점수에 고민하는 고충은 이번 수험생들만 겪는 것이 아니겠지만, 내년에는 수능제도가 또 변경될 예정이라 올해 입시부담이 특히 더한 것으로 안다.

	그림=서상균 기자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 하였건만 너무 빈번하게 바뀌는 교육제도로 인한 혼란은 사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란다. 아빠의 학창 시절에도 ‘고등학교 평준화 시행’과 예비-본고사가 없어진 ‘대입학력고사’를 혼란 속에서 치러야 했단다. 더 나은 제도를 위한 시행착오는 당연하겠지만 너무 잦거나, 충분한 검증 없는 교육제도의 시행은 그때나 지금이나 수험생들을 힘들게 만드는구나. 그동안 바뀐 입시제도 때문에 병원에서 아빠 고등학교 선후배가 몇 명 없는 기이한 현상을 경험하고 있단다.

대학입시는 같은 출발선에서 한 방향으로 뛰어 그 순위를 가리는 육상 경기가 아닐 것이다. 금·은·동의 몇 명만 축하 받을 것이 아니라, 여러 방향으로 각자의 방법으로 달려 모두가 성취를 느끼는 입시 경기는 없을까? 좀 더 빨리 달리고, 조금이라도 앞선 지점에서 출발시키고 싶은 마음에 수많은 과외, 선행학습에 내몰 것이 아니라, 너의 적성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함께 고민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아들아. 예전에 미국 연수를 마치고 귀국할 즈음, 여러 가지 이유로 아빠의 마음은 많이 무거웠단다. 그 중에서도 ‘입시지옥’이라고 불리는 우리나라의 교육경쟁 속에 너를 포함시켜야만 하는 것이 마치 아빠의 무능 때문인 것 같았다. ‘기러기 가족’도 생각해 봤는데, 성장하는 너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지 못하고, ‘성공’이라는 목표로 이산가족이 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구나. 아빠의 학창 시절에 유행하던 ‘4당5락’(4시간 자면 합격하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은 요즘도 유효한 말이니? ‘고3 수험생은 아플 권리도 없다’는 자조적인 말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유행하는 요즘에는 더 걱정이다. 하루 종일 두꺼운 K94 마스크를 착용하고 수업을 듣다가 호흡곤란이 왔던 지난 여름도… 생소한 비대면 온라인 수업을 들어야했던 가을도… 여벌의 마스크와 생수가 수험생 필수준비물인 초겨울의 입시 풍경도…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추억으로 남겠지? 웃으면서 이 시절을 회상하는 날은 반드시 올 것이다. 하지만 전염병마저 정쟁(政爭)의 도구로 삼는 사람들, 의사 파업을 초래한 근본 원인의 해결보다는 아직도 ‘편가르기’와 ‘힘의 논리’로 부당함을 강요하는 사람들, 의료현장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법안을 추진하는 사람들, 사상 초유의 ‘인턴 부재’가 단지 1년의 공백이 아니라 얼마나 오랫동안 심각하게 악영향을 미치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 대책이랍시고 기껏 ‘아랫돌을 빼내어 윗돌에 괴는’ 방법을 지시하는 사람까지… 아빠의 직업상 ‘의료’라는 창(窓)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지만, 차마 너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풍경들이 너무나 많구나.

건강하고, 성실하게 학창 시절을 보내줘서 고맙다. 자주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아빠의 빈자리를 든든하게 지켜줘서 또 고맙다. 친구들과 마음껏 운동하고, 먹고, 마시며, 자유롭게 여행을 가는 일상의 기쁨을 조만간 다시 누릴 수 있기를 희망한다. 마스크 뒤에 가려진 너의 환한 미소를 보고 싶구나. 맑은 하늘 가득 채워질 너의 꿈을 항상 응원한다. 답답해도 우리 조금만 더 힘내자. 사랑한다.

부산백병원 흉부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