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무더위로 불린 2016년 여름이었다.결국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에어컨을 샀다. 설치하러 오신 기사 두 분 중 한 분이 아파트 베란다 난간을 훌쩍 넘어 반의반평 남짓한 실외기 설치공간에 올라섰다. 아파트 19층이다. 내려다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다. 20대로 보이는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공간에 쪼그려 앉아 작업을 계속했다. 철제난간이 있다지만 고작 높이 50㎝ 정도에 군데군데 녹도 슬어 있다. 뒤로 살짝 넘어지기만 해도 체중을 온전히 버텨낼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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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서상균 기자 |
“안전띠라도 연결하고 작업하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보는 내내 불안해서 한 마디 했다. 그러자 베란다 안쪽에서 작업하던 다른 설치기사가 젊은 기사에게 무심하게 툭 내뱉는다.
“무섭나?”
젊은 기사는 대답 대신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사람 좋은 표정으로 잠깐의 대화를 나누었다. 물론 다른 조치는 없다. 저러다 사고가 나면 어떻게 되는걸까. 혹시라도 불구가 되거나 하면 치료비, 생활비는 누가 책임질까. 이럴 때를 위해 산재보험이 있지만 보나마나 그들은 전자회사 직원이 아니다. 에어컨에 붙여두고 간 명함을 보니 역시나 개인사업자로 ‘용역’을 받아 일하고 있다. 당연히 산재보험도 없을 것이다.
재해를 막으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추락 위험이 있는 작업이면 안전한 난간을 설치하고, 안전띠를 튼튼한 것으로 준비해야 할 것이다. 운전업무 중 사고는 과도한 실적 압박을 줄이고 근무 인원을 늘리면 예방할 수 있다. 각종 중독성 질병은 좀 비싸더라도 유해성이 낮은 약품을 사용하고 환풍시설을 넉넉히 구비하면 막을 수 있다. 물론 이런 조치는 모두 돈이 많이 든다. 하지만 목숨과 비교할 수는 없다. 세상 모든 사업주가 돈보다 생명이 먼저란 생각으로 안전 조치를 취해주면 좋겠지만 순진한 생각이다.
사업주 입장에서는사람 목숨도 값으로 계산된다. 사고로 노동자가 죽었을 때 사업주가 부담할 비용보다 안전 조치에 들어가는 비용이 높으면 안전 조치는 취해지지 않는다. ‘남들 다 안 지키는 법을 나 혼자 다 지키면 회사 망한다’는 한국사회의 격언도 근거로 이용된다. 과연 자기 아들이 그 위험한 일을 하고 있어도 이런 말이 나올지 의문이지만,사람 목숨 값이 다 다르다 느끼는 이들이니 어쩌겠는가. 재해를 막으려면 법으로 ‘목숨값’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노동자의 ‘목숨 값’을 높이려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입법 논의가 한창이다.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의 사업주를 처벌하고 합당한 손해배상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은 진짜 책임자인 사업주를 처벌하기 힘들었고,처벌해도 솜방망이 처벌에 머물렀으며,손해배상 책임도 제대로 묻기 어려웠다. 그래서 중대재해 발생 시 일정 요건 하에 사업주의 책임을 추정해 처벌이 가능하도록 하고(민주당 박주민 의원 안),손해배상 책임도 좀 더 쉽게 물을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사업주가 손해액의 3배 이상 10배 이하의 범위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책임을 지게하는 안(정의당 강은미 의원 안)도 나왔다. 재해 예방의 철저한 노력이 없으면 감옥에 갈 수도 있다는 건 사업주에겐 상당한 부담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책임은 더 명징하다. 돈으로 확실히 ‘목숨 값’을 높게 책정해버리는 것이니 안전조치 비용과의 비교가 명확히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법안들은 아직 입법되지 못했다. 벌써부터 경영계에선 “비현실적이고 과잉처벌”이라는 볼멘 소리가 나오고,몇몇 법률가들도 무죄 추정의 원칙에 반한다며 위헌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현행법으로 중대재해가 효과적으로 예방되고 사업주가 합당한 처벌과 책임을 지고 있었다면 이들의 주장도 일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간 어땠는가. 아직도 21세기가 맞나 싶을 정도의 참혹한 재해사망이 잇따르는데 그에 합당한 처벌과 손해배상책임을 진 사례는찾아보기 어렵다. 고작 벌금형이나 매출 대비 얼마 되지도 않을 돈만 ‘목숨 값’으로 치르고 끝났다. 그나마도 산재보험으로 대부분 처리한 돈이다. 그런데도 국회는 이들의 볼멘소리를 듣고는 법을 누더기로 만들려는 분위기다. 이대로는 앞으로도 목숨 값이 낮은 노동자는 죽어만 갈 것이다. 첫 단추부터 어긋나게 끼울 것인가.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