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원수의 특권으로 범죄인의 형벌을 면제해주는 사면(赦免·pardon)은 전근대 시대의 유습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시대부터 사면이 시행됐다.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 유리왕 2년(25년) 2월에 “(왕이) 친히 시조의 종묘에 제사를 지내고 대사(大赦)하다”는 기록이 나온다. 서양에선 기원전 1750년께 벌써 사면이 이뤄졌다. 바빌로니아 왕조의 ‘함무라비 법전’에 “아내가 다른 남자와 함께 누워 있다 붙잡히면, 그들을 묶어 물속에 던진다. 단, 그 주인이 아내를 살려주면 왕은 자기의 종(남자)을 살려준다”고 규정돼 있다.
근대 들어 처음으로 법률에 사면권을 명시한 건 영국의 ‘권리청원’(1628년)이다. 존 로크는 더 나아가 사면권의 철학적 근거를 마련했다. “법률이 결코 규정할 수 없는 많은 것이 있으며, 그러한 것은 행정권을 가진 자가 재량에 의해 공공선과 공익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명령할 수 있도록 위임하여야 한다. 엄격하고 경직된 법률의 준수가 오히려 해를 끼치는 많은 우발적인 사태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통치론’에서 통치권자에게 사면권을 포함한 대권(大權·prerogative)을 부여해야 하는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하지만 통치권자는 신처럼 완전무결한 존재가 아닌 까닭에 사익에 치우쳐 사면권을 행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임마누엘 칸트는 그래서 사면권을 “대권 중에서 가장 음흉하다”고 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적절한 시기에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특별)사면을 건의하겠다”고 밝혀 찬반 논란이 뜨겁다. 2005년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개정안을 발의할 때의 이 대표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당시 그는 “사면권은 사법부의 판단을 변경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남용했을 때 법적 안정성을 크게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법개정 사유를 개진했다. 그런데 지금은 “국난을 극복하려면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며 국민화합 차원에서 사면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는 사면이 많은 편이다. 이승만 대통령부터 문 대통령까지 12명의 국가원수가 모두 118차례의 사면을 단행했다. 잦은 사면의 폐단을 심각하게 여긴 문 대통령은 2018년 사면에 대한 절차적 통제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헌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폐단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선거를 의식한 사면 결정을 내렸다간 정치에 대한 불신만 커질 따름이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