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발표한 1978년 대학별 합격자 예비고사 평균점수 순위는 놀랍다. 1위는 물론 서울대이다. 2위는 믿기지 않겠지만 부산대이다. 340점 만점인데 서울대(264), 부산대(245.47)에 이어 서강대(241.43)·고려대(241.08)·연세대(235.05)·이화여대(228.2)·충남대(220.6)·전남대(220.05)·전북대(216.8)·경북대(193.1) 순이다. 10개 대학 가운데 5개가 지방 국립대다. 서강대의 점수가 높았던 것은 당시 다른 대학들에 비해 입학생 수가 훨씬 적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금 부산대를 비롯한 지역 국립대학생 합격생들의 수능점수는 수도권지역 중하위권 대학 수준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지역에 사는 학생들의 학습능력이 해가 갈수록 낮아진 것일까? 아니면 교사들의 수준 문제인가? 사실 우리 모두 그 원인을 알고 있다. 지역에는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가 없다. 청년들에게 지역은 더 이상 희망의 땅이 아니다. 2020년 부산대 합격생 4명가운데 3명이 진학을 포기하고 수도권으로 떠났다. 지난 5년동안 청년 5만명이 부산지역을 떠났다. 그래서 25세~34세 구간 인구의 56%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수도권에만 괜찮은 일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초중반만 해도 서울에서 가장 비싼 명동의 부동산 가격은 부산 서면에 비해 겨우 10~20% 높았다. 지금 부산 서면의 가장 비싼 곳은 3.3㎡ 당 1억4000만 원인데 비해 서울 명동은 6억6000만 원으로 4.6배가 넘는다. 기업과 돈과 사람이 몰리면서 서울의 집값, 땅값은 오를 수 밖에 없다. 지역균형발전없이 서울의 부동산 가격 상승을 잡을 수 있을까?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서울의 집값, 땅값이 지금처럼 계속 폭등하면, 서울에 몰린 25세~34세 구간의 남녀가 결혼을 하고 자녀들을 낳을 수 있을 것인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불가능하다. 코로나국면이라는 특수성도 있지만 지금 부산에서는 신입 사원을 채용하겠다는 기업을 찾아보기조차 어렵다.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기위한 동남권신공항이나 각종 사업들은 경제성이 없거나 정치적목적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심지어 한 칼럼니스트는 동남권신공항의 2016년 국토부 추정 비용은 11조원(실제 발표는 10조 2000억 원)이지만 토목공사는 예상보다 비용이 더 들어가기 때문이라는 자신의 생각을 근거로 20조 원짜리 애물단지가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7조 5000억 원까지 사업비를 줄일 수 있다는 부산시의 자료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상식과 양심도 없는 가덕신공항’이라고도 한다. 이는 무지하거나, 게으르거나, 의도적 왜곡이다.
하버드대 교수인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들인 스티븐 맥나미, 로버트 밀러 주니어가 쓴 ‘능력주의는 허구다’는 책들은 서울의 레거시 신문이나 관료들, 이들과 이익을 같이하는 일부 교수들의 주장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보여준다. ‘능력주의(Meritocracy)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나 권력이 주어지는 사회를 추구하는 정치철학이다. 지난 9월 의사파업때 ‘매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시절 공부에 매진한 의사’라는 표현이 있었다. 그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공부했는데 자신들보다 ‘능력’이 모자라는 학생들이 공공의대나 정원확대를 통해 의사가 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마이클 샌델 등은 이같은 ‘능력주의적’ 관점은 착각이라고 말한다. 사회전체로 보면 그들이 교육을 통해 자격을 취득했지만(능력적 요인) 교육기회와 가정환경, 부모의 경제적 수준 등에 따라 불평등한 특혜(비능력적 원인)를 받은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100m 달리기를 할 때 출발선에서 뛰는 사람과 부모덕분에, 서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50m 앞에서 뛰는 사람을 통과시점만을 기준으로 순위를 매기는 것이 ‘공정’한 것이냐고 묻는 것이다.
지금 서울의 레거시 미디어들, 관료들, 그들에게 포획된 학자들이 주장하는 이른바 ‘예산타당성’이라는 잣대도 ‘능력주의적’ 관점과 유사하다. 모든 것이 수도권으로 집중되어 있는 상황에서, 지역의 기업활동이나 모든 SOC 사업은 현재 기준으로는 높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그들의 평가기준에 ‘지역균형발전’의 당위성이나 비전은 아예 없다. 사회학자인 멜튼은 1968년에 처음 ‘마태효과(Matthew effect)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마태효과란 마태복음에 나오는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 까지도 빼앗기리라’는 구절에서 비롯된 말이다. 마태효과는 갈수록 비대해지는 수도권과 소멸위기에 놓여있는 지방도시간에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수도권 언론과 관료, 학자들은 ‘경제적 합리성’ 부족을 들먹이며 ‘지역적 양극화’를 방치한다. 1년전 통계청은 저출산·고령화 여파로 태어나는 사람보다 사망하는 사람이 훨씬 많아진 부산이 10년 안에 ‘소멸위험지역’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기업들이, 사람들이 서울로 서울로 떠날 때 몰랐거나 방조한 결과가 지금의 부산이다. ‘지역’의 관점이 중요하다. 거짓말에 맞서 서울공화국으로부터 독립이라도 하겠다는 결기있는 목소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석환 한국인터넷진흥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