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쇄(封鎖·blockade)’는 군사 작전에서 나온 용어다. 원래 ‘적의 주권이나 통제 하에 있는 특정 해역에 대한 모든 선박의 출입을 차단하려는 일종의 작전’이라는 뜻인데, 지금은 ‘외부와의 연결을 단절시키는 행위’라는 일상적 의미로 널리 쓰인다. 지난해 1월 23일, 이 단어는 일상적 의미의 틀을 벗어나 원래 뜻으로 돌아가는 언어적 복고를 경험했다. 코로나19 감염을 막고자 중국 정부가 우한 시민에게 내린, 군사 작전이나 다름없는 금족령(禁足令)을 통해서다. “도와주세요!” 죽어가는 우한 시민의 절규가 빗발쳤지만 헛일이었다. 전염병 치유 환경은 물론 생필품 공급 등 기본적 생활여건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죽든, 살든 각자 알아서 하라”는 반인권의 극치였다.
우한의 봉쇄는 지난해 4월 8일 해제됐다. 그리고 시진핑 국가주석은 그로부터 5개월 흐른 지난해 9월 8일,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민심의 불신은 가시지 않았다. 한 우한 시민은 쑨춘란 부총리의 방문 때 “이건 가짜야”라고 외치기도 했다. 그 진실이 드러난 것일까. 중국 정부는 지난 7일 다시 베이징과 가까운 스자좡 싱타이 창저우 등 허베이성 3개 도시를 대상으로 다시 봉쇄 카드를 꺼내들었다. 허베이성의 성도인 스좌장에서만 이틀 만에 234명의 확진자가 발생하는 등 코로나 대유행 조짐을 보여서다. 이 바람에 약 2000만 명의 주민이 ‘우한의 악몽’ 재연을 걱정하며 가슴 졸이고 있다.
중국 정부의 재봉쇄 조처는 ‘방역의 정치화’가 낳은 비극이다. 방역 잘못을 가리려는 섣부른 코로나 종식 선언이 주 요인이라는 얘기다. 이는 중국만의 오류가 아니다. 우리나라 요양시설에서도 볼 수 있는 오류다. 지난해 코로나로 숨진 900명 중 316명(35.1%)이 요양시설에서 나왔다. “코호트는 동일집단을 모아두는 것이다. 요양병원에서는 확진자, 접촉자, 비확진자 등 비동일집단들이 한 곳에 있다. 이렇게 되면 서로 바이러스를 주고 받으면서 중증으로 넘어가고 사망으로 이어진다. 이건 코호트가 아니다. 코호트라는 이름 하에 건물을 봉쇄한 것이다.” 한 전문의의 증언에서 ‘봉쇄 아닌 봉쇄’라는 우리 방역의 실상이 드러난다.
법무부의 구치소 방역 역시 마찬가지다. 전국 교정시설의 코로나 확진자는 현재 1220여 명에 이른다. 국민의 인권 보장을 위해 검찰개혁이란 추상적 가치를 주창하면서 정작 구체적 현실에서는 이렇듯 인권을 소홀히 하니, 이를 어찌 이해해야 하나.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