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는 병이 있으나 요양원에 가고 싶지 않은 노인들을 위한 주거시설이 있다. ‘어시스티드 리빙(Assisted Living)’. ‘노인을 위한 생활지원 주택’으로 해석된다. 단독·아파트 형태로 100~200세대 마을을 이룬다. 요양원이 ‘병원’ 개념이라면 이곳은 ‘집’의 개념이다. 수용자들 역시 ‘환자’가 아니라 ‘주민’이다. 의료인력이 상주하는 것은 같지만, 가구 옮기기 등 허드렛일을 돕는 별도 인력이 남의 집을 방문한다는 생각으로 업무를 수행한다.
50개 주에 보편화된 이 시설은 1983년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처음 등장했다. 창안자는 노인학을 전공한 캐런 브라운 윌슨 박사다. 그녀는 뇌졸중 환자지만 요양원을 거부하는 어머니를 위해 연구했다. “부엌과 욕실이 있는 자그마한 집. 사생활이 있고, 내가 좋아하는 가구와 반려동물이 허락될 것” 등의 요구를 참고했다. 시간표에 따라 짜여진 일상이 아닌 좀 더 ‘집 다운 곳’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누리면서 돌봄 서비스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세상의 첫 반응은 냉담했다. 은행 대출도 거부당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112개의 주거 공간을 갖춘 시설이 문을 열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눈 깜짝할 새 입주가 완료됐다. 윌슨 박사의 ‘실험’을 주시한 오리건 주는 주민들이 보다 건강하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여생을 보내는 데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봤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보조금 지급에 나섰다. 애초 윌슨 박사는 요양원의 최종적 대안으로서 어시스티드 리빙을 구상했지만, 오늘날은 독립 주거와 요양원의 중간 단계로 정착됐다. 일부 지나친 상업화로 변질된 곳도 없지는 않다.
우리도 실버타운이라는 개념이 있기는 하다. 대부분 민간에서 운영하는데, 10억 원 넘는 입주금과 월 수백만 원의 비용이 필요하다. 부자를 위한 시설이다. 공공실버타운도 있지만 65세 이상 저소득층이나 국가유공자들 외에 중산층과 서민은 입주자격 조차 없다. 이렇다 보니 노인전용 주택 수용률이 0.1%도 안되는 8000명 안팎에 그친다. 노인 1000만 시대, 우리 노인 복지의 현주소다.
최근 요양병원 발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고, 코호트 격리가 늘어나면서 완치된 노인 환자가 요양병원에 돌아가려 해도 거부당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든 상념이다. 살던 집이나 자식들 집에도 가지 못하고, 요양병원에도 가지 못하면 도대체 어디로 가라는 말인가. 나이 든 것이 죄는 아니지 않는가. 공공 ‘어시스티드 리빙’ 도입을 고민할 때다.
이승렬 논설위원 bungs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