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치에서 평화의 실질적 이름은 군비 축소의 줄임말인 ‘군축(軍縮·disarmament)이다. 군축 없는 평화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상 최초의 군축회의는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제안으로 1899년, 1907년 두 차례 열린 ‘헤이그평화회담(만국평화회의)’이다. 1차 회담에선 ‘질식성 독가스를 퍼뜨리는 발사체’ 등의 사용을 금지하는 군축을 선언했다. 2차 회담에서도 ‘기구를 통한 사출물·폭발물 방출 금지’ 등 군축을 도모했다.
하지만 군축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데서 이를 절감한다. 1차 대전 이후 결성된 국제연맹에서도 ‘타국의 안전을 위협하지 않는 선에서 군비를 제한하도록 한다’는 규약을 마련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잠수함 및 독가스 사용 제한과 주력함 건조 중지에 관한 미국·영국·프랑스·이탈리아·일본의 조약(1922년), 순양함·구축함 건조 제한을 위한 미·영·일의 제네바 군축회의(1927년) 등 숱한 시도가 모두 실패로 끝났다. 그 결과는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이어졌다.
그런 사정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1987년 12월 체결돼 냉전 종식의 첫걸음이라는 평가를 받은 ‘핵탄두 장착용 중·단거리 미사일 폐기 조약(INF)’을 당사국인 미국과 러시아가 2019년 전격 탈퇴한 게 단적인 예다. 남한과 북한의 군축 불이행 역시 마찬가지다. 남북은 2018년 ‘4·27 판문점선언’에서 ‘단계적 군축’을 합의했다. 이어 그해 ‘9·19 평양선언’에서 이를 재확인했다. 그러고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군비 증강에 몰두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력 평가기관인 ‘글로벌파이어파워(GFP)’는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 남한의 군사력을 세계 138개국 중 6위로 평가했다. 2018년 7위에서 한 단계 상승한 것이다.
반면 북한은 같은 기간 18위에서 28위로 열 단계 하락했다. 그러나 ‘6 대 28’의 군사력은 핵무기를 제외한 재래식 군사력에 대한 평가일 뿐이다. 북한은 재래식 군사력의 열세를 핵무력으로 보전하려 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핵무기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선보인 데 이어 지난 주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전술핵무기 개발까지 지시했다. 남한과 일본을 사정권에 둔 북한의 전술핵 개발은 양국의 연쇄 핵무장을 불러 동북아를 세계 최대 핵지대로 만들 공산이 크다. 남북의 군축 필요성을 웅변하는 비극적 미래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