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소의 해, 그것도 상서로운 ‘흰 소’의 해이다. 전통적으로 소는 십이지신(十二支神)의 하나로 동아시아 사람들의 삶 속에 깊이 들어와 때론 신성시되기도 했다. 농본주의를 기반으로 했던 우리나라에서도 소는 민중의 삶과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는 동물이었다. 소는 살아서는 농사의 동력이 되었고, 죽어서는 인간에게 영양분을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래서 조선조에는 가족의 구성원 못지않은 위치를 차지했다. 또한 근대기에는 집안의 주요한 재산으로 여겨져 소를 팔아 자식 대학 교육을 시켜 대학을 우골탑(牛骨塔)이라 부르는 일까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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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도의 ‘논을 가는 소’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우리나라의 회화에서도 소는 늘 중요한 역할을 했다. 경주 괘릉(掛陵)에는 무덤 둘레에 조각이 아름다운 십이지신이 새겨져 있어 한국 소 그림의 원형을 볼 수 있다. 또한 민화에서도 자주 소가 등장하는데 농경도(農耕圖)에 나오는 것은 물론 정초에 한 해의 복을 빌며 그리는 세화(歲畵)에서도 자주 보인다. 조선시대 정통화 화단에서 소를 잘 그린 사람으로는 양송당(養松堂) 김시와 그의 손자 퇴촌(退村) 김식이 있다. 이들의 소 그림은 당대를 풍미하였다. 그러나 김시와 김식의 그림에 나오는 소는 한국 전통의 소가 아닌 중국 남방에서 사는 물소의 모습이어서 한국적인 소를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또한 단지 회화의 대상으로만 그려질 뿐 인간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 친숙하지 않은 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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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면에서 한국적인 소를 본격적으로 많이 그린 화가는 단연 단원(檀園) 김홍도이다. 그는 자신의 그림에 자주 소를 등장시켰는데, 소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사람들과 함께 하는 가축으로서의 모습을 그렸다. 쟁기를 끌며 농사짓는 모습으로 나오기도 하고, 땔감을 해오는 소년을 싣고 오기도 하고, 홍수가 나면 물을 건너 주기도 한다. 늘 인간과 동고동락하며 인간의 삶과 함께 하는 유익한 동물이다. 김홍도가 그린 소의 대표적인 모습은 유명한 풍속도에 나오는 ‘논을 가는 소’라 할 만하다. 누렁소와 흰 소 두 마리는 주인이 미는 쟁기를 끌고 있고, 한쪽 옆에 두 사람이 쇠스랑으로 땅을 갈고 있다. 인간과 소가 하나가 되어 결실을 만들어가고 있는 합일의 모습이다. 이러한 회화의 전통은 근대화단에까지 이어져 소 그림으로 유명한 이중섭은 물론 진환 문학수 장욱진 박상옥 등 수많은 화가들이 소를 그렸다. 당대 한국인 화가들 대부분이 소를 그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소 그림은 일제강점기 나라를 잃은 식민지 국민의 애환을 담은 것으로 설명하곤 한다. 그만치 소는 한국인의 정서와 가장 닮은 동물이라 할만하다.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힘든 삶 속에서 소의 해를 맞아 소를 닮은 인내와 끈기로 역병을 이겨내고 힘찬 소의 기상을 찾길 두 손 모아 빈다.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