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때 지금의 서울 종로1가 광화문우체국 부근에 ‘혜정교’라는 다리가 있었다. 그 옆에 우포도청이 있었던 까닭에 포청다리라고도 했다. 그곳에서 공금횡령 등 죄를 저지른 탐관오리를 삶아 죽이는 ‘팽형(烹刑)’이란 공개처형이 이뤄졌다. 그런데 명목만 삶아 죽이는 형벌일 뿐, 실제로는 미지근하게 끓인 물에 죄인의 몸을 담근 뒤 “너는 이제 죽은 사람”이라고 선언하는 데 그쳤다. 대신 팽형이 집행되면 그 죄인을 죽은 사람으로 취급했다. 팽형 당한 죄인을 상여에 실어 집으로 보내면 집안에 감금하고 대인 접촉을 차단했다. 그의 자식은 족보에 올릴 수도 없었다. 차라리 죽으면 모든 게 끝나지만, ‘산 죽은 이’ 신세는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정신적 고통이 지속된다는 점에서 사형보다 더 가혹한 형벌이라 할 수도 있다.
시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오늘날 대한민국에 왕조시대의 팽형보다 더한 형벌 아닌 형벌이 있다. 아이의 출생을 공적으로 관리하지 않는 우리 현실이 그렇다.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에는 자녀 출생신고는 부모가 하게 돼 있다. 하지만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도 과태료 5만 원만 내면 되니, 사실상 이름만 의무인 제도다. 이런 제도적 허점 속에서 수많은 아이가 죽어가고 있다. 지난 18일 인천 미추홀구에서 숨진 여덟 살짜리 아이는 살아있었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아이였다.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전남 여수의 한 가정의 냉장고에서 발견된 생후 2개월짜리 아이 역시 마찬가지다. 팽형은 그래도 출생을 전제로 한 형벌이지만, 이 경우는 아예 출생 자체를 무시했다는 점에서 야만이나 다름없다.
문제는 이런 반인권적 행위가 빈발하는데도 근절 대책은커녕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아이가 죽어야만 태어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인구 감소’란 불치병을 앓고 있는 우리가 아이 출생을 이렇게 소홀히 한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파양(罷養)’ 논란을 일으킨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에서 문제의 한 요인을 본다. 아이 입장이 아닌 부모 입장에서 아이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대책은 이미 나와 있다. 아이 출산을 도운 병원이 공공기관에 출생 사실을 통보하는 것이다. 아이의 98.7%가 병원에서 태어나니, 병원이 가장 확실한 출생 증언자인 셈이다. 미국 영국 등 대다수 선진국이 채택했고, 유엔도 권고한 제도다. 그런데도 정부는 최근 내놓은 아동 학대 대책에서 이 권고를 반영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인구가 줄어드는 건 이유가 있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