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정의당 대표가 같은 당 장혜영 의원을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나 어제 사퇴했다. 정의당은 “지난 15일 김 대표가 당무상 면담자리를 가진 뒤 장 의원을 성추행했고, 조사 결과 다툼의 여지가 없는 사실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김 대표도 모든 사실을 인정했으며, 추가조사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라고도 했다. 김 대표는 선임대변인 시절 체육계의 성폭력과 관련해 제2의 미투운동이 시작돼야 한다고 주장했던 인물이다. 당 대표 취임 직후에는 “2021년 (부산·서울시장) 재보궐 선거는 성평등·미투 선거”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함께 ‘젠더 폭력’ 근절을 다짐한 동료를 성추행했다니, 신뢰 상실은 물론 농락당한 느낌마저 든다.
먼저, 엄청난 충격과 고통을 무릅쓰고 진상 공개를 통한 책임 규명에 나선 장 의원에게 위로와 더불어 경의를 표한다. 장 의원은 “피해 사실을 공개함으로써 저에게 닥쳐올 부당한 2차 가해가 참으로 두렵지만, 그보다 두려운 것은 저 자신을 잃어버리는 일”이라고 했다. 성추행으로 훼손된 자신의 인간적 존엄을 회복하기 위해선 공개 문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가해자인 김 대표가 성추행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공개 문책은 순조롭게 진행될 전망이다. 정의당은 이번 사건을 단순히 김 대표 개인의 일탈로 치부할 게 아니라, 혹여 조직 내부에 마초적 성문화가 있지는 않은지 깊이 성찰해 보기 바란다.
정의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미투 운동이 일어난지 3년이 되었지만, 우리 사회의 마초적 성문화의 뿌리는 여전히 깊고 질기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단적인 예다. 지난 14일 서울중앙지법은 “피해자가 박 전 시장의 성추행으로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은 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박 전 시장을 지지하는 인사나 단체에 의한 피해자 실명·얼굴 공개 등 2차 가해는 계속되고 있다. 적폐청산국민참여연대는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피해자를 무고 및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로 고발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장 의원은 “‘피해자다움’도, ‘가해자다움’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현재 일어나는 성범죄의 98%를 남성이 저지르고, 그 피해자의 93%가 여성이란 사실”이라고 했다. 옳은 지적이다. 본질은 성범죄 사실인데, 현실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 편향’에 치우쳐 “피해자·가해자답지 않다”는 비사실 내지 초사실을 유포하며 2차 가해를 양산한다. 여당은 정의당에게 “무관용 원칙으로 조치를 취해야 하고,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여당의 당부는 그대로 자신에게도 적용된다. 박 전 시장 사건 이후 여당 관련 인사들에 의한 2차 가해가 많이 발생했고, 지금도 근절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 사건을 정의당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성찰 기회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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