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말부터 인접 광역지자체 간 메가시티 논의가 활발하다. 부산 울산 경남을 묶는 ‘동남권 메가시티’, 여기에 대구 경북을 더한 ‘영남권 메가시티’ 등에 대한 구체적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수도권 일극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메가시티의 필요성이야 거론된 지 오래다. 다만 과거와 다른 게 있다면, 이를 위한 법적인 토대가 마련됐다는 점이다. 지난달 32년만에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 마침내 국회를 통과하면서다. 개정안은 메가시티 구상을 현실화할 특별지방자치단체의 설치 운영에 대한 규정을 포함하고 있다. 광역지자체들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현안이 해결됐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권역도 넓혀지는 모양새다. 부울경 3개 시도에 한정된 동남권 메가시티를 넘어 영남권 메가시티 논의도 잰 걸음을 보이고 있다. 지난 17일 부울경을 비롯해 대구 경북 5개 시도가 ‘영남권 그랜드 메가시티’ 구성을 위한 만남을 가졌다. 5개 시도는 이날 산하 연구기관이 영남권 발전 방안 마련을 위한 공동연구를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주요 연구 내용은 5개 시도 초광역 협력 프로젝트 사업 제시 및 분야별 실행계획 수립, 광역교통망 구축, 맑은 물의 안정적 공급 방안, 역사 문화 관광 등 4가지다. 오는 8월까지 연구를 마무리하고 결과를 바탕으로 분야별 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5개 시도의 만남은 지난해 7월 해당 시도지사들이 부산에 모여 영남권 공동 협력 방안 모색을 위해 ‘영남권 미래발전협의회’를 구성하기로 한 합의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5개 시도 합의는 같은 해 8월 경남도청에서 열린 제1회 영남권 미래발전협의회로 이어졌고 지난 17일 그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나온 셈이다. 지난해 7월 모임 이후 비교적 신속하게 협의를 진행하면서 단계를 밟아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물론 지난 연말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 통과도 여기에 한몫 했으리라 보인다. 그러나 법적인 여건이 바뀌었다고 해서 단번에 성과물이 얻어지는 건 아니다. 결국은 5개 시도가 수도권 집중에 대항하기 위해 얼마나 상생과 연대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영남권 그랜드 메가시티’ 구상을 낙관적으로 보기는 쉽지 않다. 당장 5개 시도가 공동 추진키로 합의한 4가지 사안에 기시감이 많기 때문이다. 영남권 5개 시도지사가 협의회를 처음 구성한 게 벌써 2007년의 일이다. 당시부터 공동 협력 사업 발굴 및 관광축제 등 문화교류 증진은 협의회의 주요 의제였다. 이와 함께 광역교통망 구축이나 물 문제 해결도 시급한 현안이었지만 지금까지 이렇다 할 결과물이 손에 잡히는 건 없다. 시도지사들이 매년 한차례가량 만났으나 ‘상생’이라는 원칙적 합의문만 내놓은 채 돌아서면 그만이었다. 시도지사들 회동도 그나마 2015년까지 지속되다 지난해에야 5년만에 재개됐다.
이번이라고 다를까. 여러 차례 협의회 중 지난 2011년 부산에서 열린 제4회 시도지사 협의회의 구체적인 합의 내용을 보자. 영남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5개 시도 발전연구원이 주관하는 광역발전계획 수립, 광역교통 인프라 확충, 영남권 5개 시도 경제관계관 회의 등 5개 항이 주요 내용이다. 특히 영남권 광역발전계획 수립은 2012년 10월 완료한다는 일정까지 제시했다. 그 결과는 어떤가. 일부 내용만 조금 바뀌었을 뿐, 큰 틀에서 지난 17일 그랜드 메가시티 구성을 위한 합의 내용과 별 다를 바가 없다. 10여 년 세월을 돌고 돌아 원점이다. 상생이라는 헛구호 아래 청사진만 난무했던 셈이다.
물론 그동안 성과가 없었다고 해서 근년 어렵사리 재개된 논의 마당을 폄하할 일은 아니다. 더구나 이를 위한 법적인 뒷받침까지 마련됐으니 여러 모로 호조건이다. 다만 지금까지처럼 도돌이표 같은 논의만 이어진다면 달라질 게 아무 것도 없다. 진정 수도권에 맞서는 초광역 경제권으로 거듭나려 무엇이 가장 절실한지 머리를 맞대고 성과물을 만들어 나가야 옳다.
그러려면 가덕신공항 건설을 둘러싼 PK와 TK의 갈등 해소가 급선무다. 갈등이 계속되는 한 영남권 메가시티는 한발짝도 나아가기 어렵다. 영남권이 맞설 곳은 수도권이다. 서로 간의 총질은 적전분열과 다름 없다. 영남권이 수도권 집중의 폐해를 없애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한다면 소탐대실의 잘못은 범하지 말아야 한다. TK 또한 그게 진정한 상생의 길임을 받아들이고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으면 한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지난해 7월 5개 시도지사 만남에서 “강력한 중앙집권제와 수도권 집중에 너무 익숙해 이제 극약처방을 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지극히 옳은 인식이다. 영남권 상생의 길은 의외로 멀리 있지 않다. 큰 갈등을 풀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해결되기 마련이다.
논설실장 jj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