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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페리의 비핵화 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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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발효된 핵확산금지조약(NPT)에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 등 5개국의 핵무기 보유는 인정하면서 그 외 다른 나라가 핵무기를 갖는 건 용납하지 않는 불평등이 그 한계다. 25년의 발효기간이 만료된 1995년, 조약 연장 여부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핵보유국과 비보유국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렸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당시 조약의 평가 절차를 강화하고, 핵보유국의 핵군축 노력 원칙을 채택하는 선에서 무기한 연장에 합의해 NPT는 지금까지 존속되고 있다.

핵무기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불평등 체계는 미국 공화당의 신보수주의자들인 ‘네오콘’이 주창하는 “힘이 곧 정의”라는 약육강식 철학을 통해 극명하게 표출됐다. 2019년 ‘선 핵포기’ 요구로 하노이 북미회담을 결렬시킨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대표적인 네오콘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네오콘은 아니지만 재임 시절 그 영향을 받아 ‘힘=정의’ 철학을 입버릇처럼 외치고 다녔다. ‘미국 우선주의’는 ‘힘=정의’ 철학의 산물이다.

NPT에 반기를 들고 형성된 게 모든 나라의 핵무기를 전면 금지하자는 ‘핵무기금지조약(TPNW)’이다.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이 중심이 되어 펼친 10여 년 노력의 결실인 TPNW는 지난 22일 유엔이 공인한 가운데 발효됐다. 미국 등 핵보유국들의 많은 방해가 있었지만 대다수 국가의 비핵화 염원을 막을 수는 없었다. ICAN은 TPNW 탄생 공로로 2017년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TPNW가 발효된 날,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방부 장관과 대북정책조정관을 지낸 윌리엄 페리는 미 핵과학자회보에 ‘미국이 TPNW를 지지해야 하는 이유’라는 글을 기고했다. 그는 이 글에서 “NPT는 완전한 군축 조약 체결을 위한 협상을 성실히 이행할 것을 의무화했지만, 미국 등 핵보유국은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며 “TPNW는 이런 실패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중지 및 대북 제재 해제 등 3단계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방안인 ‘페리 프로세스’를 제시해 사상 처음으로 남북·북일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인물다운 글이다. 무력의 우세는 결코 정의가 될 수 없다. 조폭의 정의일 뿐이다. 평화만이 모두가 수긍하는 정의가 될 수 있다. 미국은 물론,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는 우리나라와 일본, 미국과 핵 대결을 벌이는 북한도 페리의 당부를 받아들이고 TPNW에 참여해야 한다. 그것만이 전도된 정의를 바로세울 수 있는 영구평화의 길이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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