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만하면 성희롱이니 아동학대니 하는 쓰잘머리 없는 일들로 세상을 쑤석인다. 당연히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슬프게도 내겐 전혀 낯설지 않은 폭력이다. 달아나지 못하는 내가 있다.

내가 다녔던 학교 선생님은 여학생들 속옷 끈을 튕기며 휘젓고 다녔다고 자랑했고, 영화처럼 “야, 너그 아부지 뭐하시노?” 하고는 뺨을 예배당 종 치듯이 때린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 미술 선생은 내 뺨과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수업을 했다. 일상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일이다. 담임 선생님이 “내일 아버지 학교 좀 오시라고 전하라”했다. 그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내가 뭘 잘못했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무겁게 가라앉고 있었다. 잠자리 들기 직전에야 아버지께 겨우 말을 전했고 냅다 호통을 들었다.

학교로 찾아온 아버지가 담임을 만나는 동안 내 심장은 최대 박동수로 뛰고 있었다. 하늘이 무너지고 있었지만 뜻밖에도 돌아선 아버지 얼굴이 밝았다. “너 과외공부 할래?” 싫다고 겨우 대답했다. 당시는 중학교 입학시험이 있었고, 방과 후 학생들을 모아서 담임 선생님이 몰래 과외를 했다. 물론 불법이었다.

며칠 뒤 청소를 마치고 돌아가려는 나를 담임 선생님이 불렀다. “너는 남아라.” 선생님이 찾아서 좋은 일이 없었기에 걱정부터 했다. 그런데 과외수업에 나를 앉히는 게 아닌가. 담임 선생님은 내일 치를 시험문제지를 나눠주었다. 삼십 분 뒤 채점을 하고 오답을 정정한 뒤 시험지를 거두고 수업은 끝이 났다. 성적을 올리는 아주 편한 방법이었다.

이건 올바른 일이 아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시험지를 쳐다보고 있는 내게 담임 선생님이 다가와서 손가락으로 살짝 정답을 가리키고 지나갔다. 놀라 고개를 드는 내게 담임 선생님은 은근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다정한 분이었다.

그다음 날 아버지는 한 번 더 내게 과외공부를 말씀하셨고 나는 기어드는 목소리로 싫다고 겨우 대답했다. 이게 사달이었다. 그 이후로 나를 대하는 담임 선생님 눈빛이 변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야구부가 전국을 제패하던 명문이어서 부잣집 아이들은 야구 글러브와 배트를 가지고 다녔는데 손에 잡히는 대로 야구 배트로도 아이들을 팼다. 물론 그 이후로는 나도 맞았다.

가난해서 월사금을 제때 내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종종 성난 얼굴로 이름을 부르고는 뺨이든 뭐든 닥치는 대로 때리고 내쫓았다. 집에 가서 돈을 가져오라는 거였다. 그런데 어디에도 돈은 없었다. 집에 가면 왔다고 엄마한테 두들겨 맞을 게 뻔했다. 눈물 그렁한 눈으로 하늘이나 보며 나돌다가 청소랑 과외가 다 끝난 뒤 몰래 가방을 챙겨 냅다 튀었다. 집에 가서는 놀다 늦게 왔다고 안 맞으면 다행이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2년을 다 채우고서야 그 학교를, 그 담임 선생님한테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가 커서 어른이 되면 찾아가서 악다구니라도 붙으리라 이를 악물었다. 당신이 과연 선생이냐고 양심이 있느냐고 따질 작정이었다. 고등학생 때에는 중학교 시절 선생의 비위를 까발리는 동급생의 하소연을 듣는데 수법이 낯익어서 물었더니 바로 그 담임 선생님이었다. 중학교 선생이 되어 있었다. 기가 찼다. 한참 뒤 꿈에서 두어 번 만나 험악한 분위기에 가위눌리다 깬 것 말고는 실제 찾아가 엉겨 붙지는 못했다. 부끄럽게도 난 깨어있는 시민은 못 되었다. 어느 학교 교장으로 있다가 그만뒀다는 소식까지 우연히 들었다.

우리 부모들도 교육할 줄 몰랐다. 성질나는 대로 아이를 패고, 걸핏하면 대문 밖으로 쫓아내고, 선생에게 대들지 못하는 화풀이로 자식을 때리고, 생짜로 공부하라고만 윽박질렀다. 아이가 학교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지 모르면서 어쨌든 졸업만 하면 사람이 되고 출세하는 줄 알았다. 젬병이었다.

무엇보다 가치있는 일은 우리 아이들을 최고로 잘 키우는 일이다. 도로를 만들고 축제를 하고 기념물을 세우는 일보다 수백 수천 배 더 중요한 것이 우리 아이들을 귀하게 교육하는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요긴한 사명은 하늘이 내게 맡기신 아이를 올곧게 기르는 일이다.

전 생명그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