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나온 향수 ‘샤넬 넘버5’는 30초마다 한 병씩 팔린다는 20세기 아이콘 가운데 하나다. 그만큼 이야깃거리가 많다.
프랑스 디자이너 코코 샤넬(가브리엘 샤넬·1883~1971)이 조향사 에르네스트 보(1881~1961)를 만난 인연부터 극적이다. 러시아 망명 귀족으로 열한 살 연하의 연인인 드미트리 파블로비치 대공이 이별의 선물로 코코에게 소개해 준 사람이다. 그리고 명작 발레곡 ‘봄의 제전’을 만든 러시아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를 빼놓을 수 없다. 유부남인 스트라빈스키와 코코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아픔이 오롯이 이 향수에 담겼다. 정작 에르네스트 보는 백야의 환상적인 이미지를 재현하고자 했다. 그는 천연 향료에 합성향료를 혼합하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고, 코코는 심플한 정사각형 디자인으로 세련미를 더했다.
남는 건 5라는 숫자다. 코코가 1~24번까지 번호를 붙인 샘플 가운데 5번째를 선택했다는 설과 코코의 행운의 숫자가 5라는 설 등이 분분하다.
그러고 보니 5가 묘하다. 목·화·토·금·수의 5행을 본떠 궁·상·각·치·우의 5음계가 나왔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5감과 신맛, 쓴맛, 단맛, 짠맛, 감칠맛의 5미는 삶을 향유하는 기본이다. 무엇보다 사람 손가락이 5개고 발가락이 5개인 사실이 새삼스럽다.
지금 5는 대한민국 일상사를 지배하는 숫자다. 코로나19 3차 대유행에 따른 국민행동수칙인 ‘5인 이상 사적모임 금지’는 설 풍속도마저 바꿔 버렸다. 지난 추석 때 유행했던 ‘불효자는 옵니다’란 슬로건이 무색해졌다. 웃픈, 우스우면서도 슬픈 예가 한둘이 아니다. 생일을 맞은 부모님을 3형제가 한꺼번에 찾아뵐 수 없어 금·토·일요일로 나눠 차례로 인사를 드렸더니 부모님이 몸살이 날 지경이니 설에는 아예 오지 말라고 했다거나, 직장 동료 등 5명이 함께 식사를 했다는 이유로 옷을 벗게된 기초자치단체 간부 공무원 등이 그 사례다. 특히 ‘사회적 거리두기’ 방식이 사회적 약자에게 더 가혹한 ‘단체기합’ 아니냐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예사롭지 않다.
정세균 총리는 그제 설을 앞두고 거리두기 실천을 강조하며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말을 언급했다. 정 총리는 지난해 12월 22일 ‘5인 이상 모임 금지’ 전국 확대 방침을 내놓으며 “3단계보다 강화한 방역조치로 3차 유행의 기세를 확실히 꺾겠다”고 했지만 왜 기준이 5인인지 설명하진 않았다. 부산시의회 의원회관 외벽엔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구요~ 우리우리 설날은 내년이래요~’란 현수막이 내걸렸다. 그 이유가 오리무중이다.
정상도 수석논설위원 jsdo@kookje.co.kr